내가 개발한 특제커피 타줄게

선생님을 위한 반창고 - 첫 발령 2

by 다다쌤

학교 운동장의 나무에 연두색 새순이 올라왔다. 꽃피는 3월, 보건실은 두통으로 방문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머리는 아프지만 체온계로 측정해 보면 대부분 열이 없다.


“ 새 학년 적응하느라 힘들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거야. 그럴 땐 일찍 자고 쉬어야 해. 학교 올 때 아침밥도 꼭 챙겨 먹고. 알았지? "


당장이라도 ‘뿅’ 낫게 해주고 싶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체력은 필수니까 아침은 꼭 먹으라고 얘기한다. 요즘은 밥을 안 먹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늦잠 자서, 입맛이 없어서. 밥 대신 과자를 한 봉지 털어먹고 속이 쓰리다며 보건실에 오는 녀석도 있다. 아이고, 내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학생들에게 조언하는 내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나는 지역에서 가장 큰 학교의 신입 보건교사로 발령받았다. 업무도 익숙지 않은데 혼자서 많은 인원을 치료하다 보면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출근할 때면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 시간, 한숨 돌리고 있는데 1학년 부장님이 보건실로 찾아왔다. 얼마 전 아이들로 북적이던 보건실을 보고 " 여기가 우리학교 만남의 장소네! " 라며 웃으셨던 기억이 났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퇴임을 곧 앞두고 있었다.


“ 시간 괜찮아? 내가 개발한 특제 커피 타줄게. ”

“ 네? ”

뜬금없는 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였다. 부장님은 양손에 카누와 우유를 들고 있었다. 그는 먼저 카누를 천천히 뜯어서 정수기의 따뜻한 물로 녹였다. 종이컵에 우유를 담더니 전자레인지에 넣어 1분가량 돌렸다. 그의 행동이 어찌나 느리던지, 도와드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 특제커피라고 하셨으니까 기다리자. ‘

그는 한약처럼 녹진한 카누를 우유 위로 붓더니 티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씩 웃으며 내게 완성한 음료를 내밀었다.

" 이거 라떼야. 집에서 자주 마시는데 카페 못지않게 맛있어. "


' 라떼라고? 이걸 만들어 주려고 오신 건가? '

나는 자타공인 라떼 전문가다. 집 근처에서 라떼를 맛깔나게 제조하는 카페를 외우고 다닐 정도다. 우유를 적게 넣거나, 얼음을 과하게 넣는 가게는 맛이 밍밍해서 별로다.


내손에 들린 부장님 표 특제커피를 살펴봤다. 갈색 커피 위로 카누 알갱이가 한두 알 보였다. 정수기의 온수는 펄펄 끓는 물이 아니기에 커피 몇알이 다 녹지 못했나 보다. 숨을 들이 마시니 달콤한 향이 났다. 종이컵에 입을 대고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이 목구멍부터 가슴까지 퍼졌다. 이상하다. 커피알은 다 못 녹인 온도인데 종이컵을 잡은 손이 따뜻했다. 어느새 비어버린 종이컵을 보며 생각했다.

' 카페 음료보다 더 맛있다. '


부장님은 마무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며 본인의 교실로 돌아갔다. 달달한 특제커피를 마신 후 종일 피곤하고 찌뿌둥했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무거웠던 머리와 어깨가 한결 가벼웠다. 신입교사에게 특별한 노하우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왠지 잘 될 것 같았다.


의자에 뒤로 푹 기대어 앉은 후 눈을 감았다. 나는 라떼 맛집 리스트에 새로운 카페를 추가했다.

‘ 3월, 봄날의 카누라떼 '


< 신입교사 시절, 듣고 가슴이 찡했던 말 >

" 처음이라 그래. 시간이 지나면 김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생길 거야. "

"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