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에 자러 와도 돼요?

by 다다쌤

“선생님, 저 보건실에서 자도 돼요?”

초등학교 4학년인 민수는 또래보다 유난히 작고 말랐다. 길고 짙은 속눈썹에 맑고 큰 눈은 꼭 사슴을 닮았다.

“민수야. 어제도 보건실에서 한 시간 자고 갔잖아. 오늘도 몸이 안 좋니?”


민수는 거의 매일 보건실을 찾았다. 주 호소는 두통과 복통. 4학년이지만 3학년으로 착각할 만큼 작고 여린 아이여서, 처음에는 정말 어디가 아픈 건 아닐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와 통화도 해보고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처음엔 어르고 달래 교실로 돌려보냈지만, 교실에 가서는 담임 선생님에게 조퇴를 시켜달라며 계속 졸랐다. 1교시부터 시간 말이다. 어머니와 담임선생님과 의논 끝에, 조퇴보다는 보건실에서 한두 시간 쉬게 한 뒤 교실로 돌아가게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민수는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보건실에 출석 도장을 찍은 셈이다.


“머리가 아파요.... 보건실에 누워있을래요.”

"딱 한 시간이야. 종 치면 교실로 올라가자."



그러던 민수가 5학년이 되고 나서는 보건실에 오지 않았다. 학년이 바뀌자마자 발길을 끊은 건 아니었다. 작년 2학기쯤부터 방문 횟수가 줄더니,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서는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디가 아픈 것인지, 전학을 간 것인지 걱정했지만, 가끔 복도에서 스치는 민수의 모습은 건강해 보였다.


어느 오후, 보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베시시 웃으며 인사했다. 그 순간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민수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민수는 키가 좀 자랐고, 머리는 파마를 했는지 곱실곱실 했다. 몸은 여전히 또래보다 마른편이었지만, 구부정하던 어깨가 뒤로 반듯하게 펴져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민수를 의자에 앉혀놓고 물었다.


"민수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지?"


"네, 선생님도 잘 잘지내셨죠?"


"그동안 보건실에 안 왔더라.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비결이 있을 것 같아. 알려줄래?"


"아, 그건요...."


민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아이스 스케이팅을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지만, 코치님이 재능이 있다며 선수 생활을 권유했다고 한다.


"선수하려면 기초체력이 엄청 중요하대요. 매일 운동해야 해요. 새벽에 일어나서 스케이트장에서 형들이랑 같이 훈련해요. 저 스케이트 엄청 잘 타요, 선생님!"


민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늘 눈물이 맺힌 듯 한 사슴같은 눈망울이 이제는 총기가 넘쳤다. 매일 새벽 훈련이라니, 너무 힘들진 않을까 걱정되어 물었다. 민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동하고 나면 근육통이 오긴 해요. 몸도 힘들고요. 담임 선생님도 제가 등교할 때 가끔 안쓰럽게 보실 때도 있어요."

"우리 민수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요즘은 배나 머리가 머리가 아프지 않아?"

"네. 안 아파요. 근육통은 있지만요. 형들이 몸이 튼튼해지는 과정이라고 했어요."


민수처럼 한때 보건실 단골이던 아이들 중 오지 않는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복싱, 등산, 스케이트처럼 몰입할 수 있는 ‘운동’을 만났다는 것.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하는 운동이다.

민수에게 아이스스케이팅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삶의 중심이 되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그만큼 단단해졌다. 자신감이 생기고, 규칙적인 생활은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주었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스케이트장에서 자기 삶을 힘껏 살아가고 있다. 그런 민수를 보며 나는 조용히 웃었다. 언젠가 또 다른 민수가 보건실에 올 것이다. 그 아이의 눈에서도 반드시 반짝이는 빛이 피어나기를.


[ 이제는 오지 않는 보건실 단골손님의 말]

- 선생님, 저는 더 튼튼해지고 있어요.

- 운동하고 나면 다음날 근육통이 와요. 몸이 강해지는 과정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