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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있는 부모'를 잘 이해하고 잘 파악할 것

이혼일기, 여덟 번째 상담 episode 3.

by 검정멍멍이




─어떤 소망? 뭘 그렸어요? 본인이 아버지와 엄마한테 이런 과거 얘기를 하면 좀 좋은 시나리오는 어떤 게 있었을까요?

나는 선생님이 '위로' 같은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기대는 딱히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최소한 들어주기만 해도 최선의 시나리오라 생각했죠. 그래서 중간에 엄마, 아빠 모두 살짝 흥분하셨을 때 두 분을 비난하러 온 게 아니니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길 부탁드렸고요... '그냥 내 얘기만 좀 들어달라 그리고 두 분의 언성이 높아지면 내가 굉장히 예민해진다.' 그렇게 부탁드리고 말을 이어갔고 저는 끝까지 흥분하지 않았어요. 아! 엄마한테 왜 이혼할 수 있을 때 아빠와 이혼하지 않았냐고 원망을 토해 낼 때는 조금 저도 흥분해서 언성이 높아지긴 했네요... 왜 드라마에 '그런 엄마들' 있잖아요? 속 썩이는 남편 다 이해해 주고 말도 안 되는 사연들 혼자 다 견뎌내는 그런 불쌍하고 답답한 그 옛날 엄마들요. 그날밤 대화에서도 '그런 우리 엄마'가 보이니까... 진짜 미쳐버리겠더라고요.


─아버지는 왜 그렇게 버럭 하셨을까요?

─아빠는 원래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원래 인간은 누구나 다 이기적이라 하지만 특히 더 이타적이지 않은 사람이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방어 기제가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그냥 흘려보내고 다 잊고 지내도 될 과거를 들쑤셔서 다시 과거의 아픈 감정들이 떠오르고 또 그걸로 인해서 엄마한테 안 좋은 감정이 떠오를까 봐 그게 두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감정 때문에 보호를 해야 된다고 아버지가 느끼셨을까요?

─자신을 보호해야 된다고요?


─네. 선생님 얘기를 들으시면서 아버지가 뭐가 두려우셨을까요?


─관계가 악화되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그 상처를 꺼내다 보면 그 상처로 인해서 또다시 고통을 겪어 올 거고...


─애매하네. 선생님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게 아버지가 왜 두려우셨을까요?


─그때가 자기도 힘들었던 시기였으니까요.


─힘들었던 과거, 그 힘들었던 시기가 생각난다고?

─네. 그러니까 아버지도 고통스럽겠죠. 정상적인... 아, 이런 표현도 조금 아니지만. 정상적인 말고 다른 표현이 없네요.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그렇게 폭행을 당하고 칼로 위협을 받으며 싸웠으면 보통 여자가 이혼을 선택하는 게 맞죠.


─옛날에는 이혼하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특히 시골에서는 더욱...


─그렇죠. 물론 지금이나 그때나 보통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땐 더 옛날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였으면 과연 그랬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해봤어요. 아휴... 아무튼 엄마랑 저랑은 다른 거니까.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뭐랄까... '최소한 내 가정에서만큼은 아빠처럼 그렇게 비겁하게 하지 말고 진심으로 노력해 봐야겠다' 이 정도? 사실해야겠다는 마음은 아직은 못 먹은 것 같고... 근데 그게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그래야 되는데...


─맞아요. 너무 좋네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했던 것처럼
똑같이 내 사람도 용서하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




─'와꾸' 좀 그만 만들어. 아이고 하하... 진짜 '와꾸'의 늪이야.


'나에겐 새파랗게 여기 저기 멍든 "와꾸" 같은 게 너무 많다는 선생님의 날카로운 농담이 박혀왔다.



이거밖에, 이런 방법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저도 좀 답답해요.

─왜, 생선 담는 박스 있잖아요? 나무로 된 판자. 그게 막 여기 꽉 찬 것 같아.


허공에 손으로 네모 모양을 크게 만드는 선생님, 그걸 바라보니 답답한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한테 가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쉽지 않은데, 가서 '이렇게 한번 해봐야겠다'라고 용기를 내고 이런 건 의식적인 측면이긴 하지만 굉장히 좋은 그런 자질 같아 보이세요. 그리고 갔다 와서 현실적인 면에서 포기를 딱! 하고 본인 방향을 딱 잡고 이런 면들은 참 제가 뭐 '와꾸' 짠다고 놀리기는 하지만 선생님이 그쪽으로 노력해 온 것만큼 굉장히 자기 삶, 생각이나 방향은 정돈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에 맞게 삶의 방향도 탁! 돌리고 이런 면은 이미 너무 잘 돼 있고 잘하신다... 사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상담에서 필요할 때도 많거든요.


.......


─또한 선생님이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아버지 심정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는 좀 어려워하시는 것 같다는 것. 엄마에 대해서도 왜 그렇게까지 엄마가 불쌍하고 엄마한테 과하게 본인의 심정을 대입하다랄까요? '과하게...' 약간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과하게 엄마를 너무 불쌍해하고 왜 이혼 안 하는지 너무 안타까워하고 막... 이런 것들이 조금 의아한 느낌도 사실 있어요. '도대체 뭐가 마음 안에 있으신 걸까?' 그런 생각도 좀 들기는 해요. 그리고 아버지와 첫 째 딸이 겉에 표현 방식은 굉장히 다르지만 속이 굉장히 비슷하실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그거는 맞는 것 같아요. 아빠도 마음에서 상처가 많은 사람...


─뭔가 여리고?


─아마도요? 조금 주눅 든 면이 좀 있으신 있으신 거 같아요.



─그날 밤 아빠의 아우성 중에 "아빠는 뭐 할아버지랑 안 그랬는 줄 아냐?" 그 얘기가 딱 꽂혔어요. 저한테는 그게 들어왔어요. "다 그렇게 사는 거야!" 이러면서... 근데 저는 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거든요.


─네. 그러시군요...


─그런 삶을 지금까지 증명해오고 있고요. 최소한 저는 아빠처럼 그렇게 비겁하게 안 살고 있다고 자부해요! 아빠가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후 영정 사진을 몇 년을 거실에 놨었어요. '그런 사람이 자기 자식이 와서 지나간 과거는 다 잊자고 손을 내밀러 왔는데 그것조차 못 잡는 너무 용기가 없고 비겁하지 않아?' 하고 엄마에게 말하니까 피식하고 웃으시더라고요. 엄마의 웃음의 진짜 의미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는 그 웃음에 용기를 얻었고 오히려 당당해졌어요. '최소한 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정말 잊고 살았던 그 아빠에 대한 증오를 내가 잊고 살았구나.' 그런 감정을 잊고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좀 대견했어요.


그렇게 가득했던 증오를
잊고 살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용서한 거잖아요?


─말씀하시는 과정에서 약간 이런 것도 느껴지네요. 아버지가 외로웠겠다 생각하면서 약간 아버지를 복구하고 아버지와 뭔가 화해하고 싶기도 한데 중간에 엄마가 딱! 계시네요. 중간에 엄마가 뭐랄까... 맞닿고 있달까? 약간 방향을 탁 틀고 계시면서 선생님하고 딱 붙어 있어요 엄마가. 그래서 같이 아버지를 흉보고 끌어내리고 약간 그런 걸 하시네요. 뭔가 좀 묘한데요. 엄마하고 관계가?


─그러니까 이런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엄마가 자꾸 아빠를 지칭할 때면 옛날부터 "얘네 아빠" 라는 표현을 자식인 저에게 써요. 저는 그게 굉장히 싫거든요.


─선생님한테?


─네. 엄마가 저한테 아빠를 지칭할 때는 "너네 아빠"가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너무 싫어서 엄마한테 이번에 진지하게 얘기해 봤어요. '엄마! 나 엄마 자식이야. 도대체 뭐가 얘네 아빠야... 너의 아빠라고 표현해야지 난 엄마의 친구나 뭐 엄마가 맨날 의지하는 이모가 아니야! 엄마 난 엄마 자식이야. 제발 그렇게 얘기하지 말아 줘.'


─그렇네요. 엄마가 좀 묘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우리 엄마는 '어른스럽지 않은 것 같다'라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던 거죠... 그날 엄마에게 이렇게 울부짖었어요. '막상 나이를 먹어보니, 자식한테는 할 소리가 있고 하지 말아야 될 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엄마는 나에게 하지 말아야 될 소리까지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근데 엄마의 선택이니까. 더 이상 "얘네 아빠"라는 표현을 나한테 쓰지 말고 아빠가 어쨌다고 하며 넋두리하는 거 나한테 그만해 줬으면 좋겠어. 난 너무 괴롭거든. 그건 엄마 아빠가 해결해야 될 엄마가 해결해야 될 문제지. 엄마 지인이나 이모들한테 하면 되잖아!'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토해내고 나니 막상 엄마가 그러더군요. "그럼 나는 이런 소리를 누구한테 하니..." 참... 우리 엄마도 불쌍한 사람이죠. 그 한 맺힌 소리가 제 속에 파도처럼 밀려오니 불현듯 미안한 마음에 속이 아려오고...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해요.



─근데 엄마가 너무 이상한 거예요. 동시에...



─선생님이 엄마 너무 불쌍하단 말 할 때마다 좀 이상해요. 그리고 그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는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엄마가 이상해요, 어른스럽지 못해요"라고 말하면서도 엄마한테 그냥 찰싹 붙어 있는 그런 자식?


─그런가요? 이번에 들으면서 또 알게 됐는데 제가 아빠에게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되게 많이 당했던 정황을 알게 됐어요. 엄마가 딱 하나 얘기해 준 사연에서 아빠가 말을 끊었거든요. 엄마가 눈치 없이 하지 말아야 될 소리까지 하고 있으니까 아빠가 말을 끊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연이었어요?


─어릴 때 아빠가 화가 나서 저를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데요. 칼처럼 날카로운 걸 가지고 저를 혼내는 상황이었나 봐요. 그래서 엄마가 애한테 그러지 말라고 막 뭐라 하며 문 밖에서 우는데도 아빠가 그렇게 저를 모질게 막 혼을 냈었다네요... 저에게는 아무 기억도 없는 그 옛날 얘기를 듣는데 그 장면이 바로 상상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옛날 집의 구조나 거기서 내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을까 하는 정황이 그려지고 상상이 되는 거죠.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서러운 감정은 없으니까... 여하튼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그런 사건 같은 일들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아빠라는 존재는 '자기 기분이 나쁘면 예측할 수 없이 날 괴롭히고 항상 불만이 가득했던 사람이란 게 지금도 지배적인 감정이니까요.


─아뇨. 안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졌는지 모를 것 같은데? 생각과 달랐을 수도 있어...


─그렇죠 모르죠.


─근데 엄마가 그 일을 굉장히 무섭게 얘기를 하시네요...


─제가 거기서 그 상황에서 또 이런 생각을 좀 해봤어요. '아빠는 엄마한테 할 화풀이를 어린 나에게 했던 걸까? 그러니까 엄마를 미친 듯이 답답해하며 분을 이기지 못했던 걸까?' 그날밤 옛날 얘기를 하면서도, 엄마한테도 뭐라고 했거든요. 또 엄마한테 욕을 한 건 아니지만 자기 분에 못 이겨서 또 "시발" 하면서... "그러니까 당신이 좀 잘했으면 내가 그렇게 안 했을 거 아니야!" 하면서 엄마를 몰아세웠죠...


─......


─동생 관련된 얘기를 아빠가 꺼냈어요. 철없던 시절이 동생이 남의 물건을 훔쳤나 봐요. 아빠 입장에서는 동생이 나쁜 짓을 했으니 엄마에게 애를 잘 챙겨보라고 했는데 엄마가 몇 번을 얘기해도 말을 안 들으니까 결국엔 아빠가 동생을 혼냈었나 봐요. 때렸는지 뭘 했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 얘길 하면서 한 마디 툭 던지셨어요. "그때도 너네 엄마가 똑바로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 근데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또 아빠 입장에서 엄마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지금의 저는 너무 잘 이해가 돼요. 이해가 잘 되니까 억울하기까지 하고요.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아빠의 말을 곱씹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그나저나 결국에 아빠는 아직도 남 탓을 하고 있네?'



─거기서 정신 차리고 생각했죠. 잠깐, 그럼 지금 나도 남 탓을 하고 있는 건가? 아빠처럼 남 탓하면 안 되잖아. 그럼 나는? 남 탓 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 나도?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내 상황과 감정에 대해 깊게 돌아봐야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또 프레임인지 모르겠지만...

─맞아요. 순간적인 게 딱 이렇게 보일 때가 있죠...


─아빠가 집을 박차고 나가고 엄마와 아빠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어요. '엄마! 저 인간은 결국에는 또 남 탓이야. 자기는 이런 상황 때문에 그랬다는 본인 입장의 이야기는 죽어도 하지 않고 네가 어쨌고 엄마가 어쨌고 할아버지가 어쨌고 하며 말하고 있잖아!' 하며 씩씩거리며 생각해 보니 아빤 결국 모든 게 '남 탓이더라고요... 마지막에 아빠가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조상 탓 그렇게 여기며 살아라"라고 말을 했는데 엄마랑 얘기하다 보니 그게 아빠가 저한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싶었어요...


─그래서 현실 속 우리 부모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다른 얘기고 내 마음 안에 있는 부모를 잘 이해하고 잘 파악할수록 나를 잘 알게 돼요.

─네...


그래서 '내 마음속 부모'를 보는 거죠.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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