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아홉 번째 상담 episode 2.
선생님이 어떤 자료를 공유해 주셨을까, 또 무엇에 도움이 되는 걸까 궁금했지만 핸드폰을 열어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요즘 신뢰에 대한 개념에 대해 혼란이 와 나름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보다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왜 그렇게 됐을까 또 제가 이렇게 된 원인을 부모님한테 찾는 건 아니지만 영향이 없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저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약간 배척하고 처음에 조금 거리를 두고 저는 접근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게 어디서 귀인 했을까 고민해 보니, 결국 '신뢰를 하지 못한다'라는 '관념'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내가 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을까에 대해 또 고민해 보니 답을 찾지는 못하겠더군요. 아무튼,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하는 버릇이 제 삶을 '꽤나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미움받을 용기> 책에서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친구이다"라는 개념에 대해 강조하던데... 아마 이런 습성이 저의 인간관계에서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 수 있을 거고...
선생님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하고 싶은 말을 삼키듯 호흡을 내뱉었다.
─아직까지 선생님이 상담 안으로 들어오시지는 않았어요. 책을 이야기하면서 상담 밖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뭐랄까... 상담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닌데, 좀 더 깊이 있고 구체적인 상담을 하려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셔야 돼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남편을 좀 밀어냈다는 게, 결국 뭘 떠올리면서 이제 얘기를 하신 걸 거거든요. 그 떠올린 거를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 육하원칙 있잖아요. 누가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한테 무슨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고 상대가 어떻게 했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실수록 도움이 돼요. 추상적인 거는 우리에게 아무 흔적도 남길 수가 없어요...
─......
─작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작업'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머리로 이끌어 가는 건 아니거든요. 철저하게 '바텀 업'이에요. 밑에서부터 올라와야 돼요.
─그러니까... 저도 어떤 감정을 느껴서 제 생각이나 사연들을 이야기하는 건데요? 저도 이걸 생각만으로 한 게 아니라...
─아니, 자유 연상을 하는 거예요.
─네? 벌써 자유롭게 생각한 거를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데...
─아휴 저 프레임! 자유 연상을 아직 해보지도 않고 자유롭게 생각한 걸 얘기했다고 벌써 치고 나가잖아요. 고집쟁이야! 어?
─아... 그래요?
─아! 이 고집쟁이.
─뭐... 방법을 모르나 보죠 그러면... 도대체 방법을 모르겠어요.
─방법을 조금씩 얘기를 해 주는데. "이거 진짜라고" 그러고 또 저거는 "내가 지금 떠오르는 대로 하고 있다"고 그러고... 그러니까 저도 뭐 자꾸 요구만 하기는 어려우니까 이제 기다리는 거죠. 조금씩 조금씩... 어떤 사람은 처음에 딱 얘기해 주면 바로 하거든요. 바로 되는데, 그런 사람은 사실 드물고 나름대로 다 스타일이 있으니까...
─근데 이런 게 있지 않아요 선생님? 상대방은 이걸 A라고 얘기해 줘도 이 사람은 이 사람이 말하는 A가 A인지 모를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거예요. 앞장서서 내가 다 알고 있고, 다 하고 있다고...
─아뇨, 아뇨. 그거랑 조금 달라요. 그러니까 그런 자존심을 부린다거나 '나도 다 알아!' 뭐 이런 식으로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자존심은 아닌데, 아마 본인 콘셉트로 다 이렇게 흡수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영상을 보냈어요. 메시지로 우리가 어떤 작업을 작업을 이제 하게 된다면 어떤 작업을 아마 할 거다 하고 알랭드 보통 아시죠? 그 작가와 인터뷰한 영상인데, 제가 주로 하는 방식의 상담을 설명을 잘해놨더라고요. 그래서 보내드렸어요.
─네. 꼭 볼게요
─그래도 참, 자기를 알려고 몸부림치는 게 느껴지고 변화에 대해서 상당히 용기를 내는 사람이구나 그런 점은 참 좋은 자질인 것 같아요. 근데 고집은 세다. '와꾸'는 여전히 강하다.
─그 말씀이 뭔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오늘 <미움받을 용기> 책에서도 읽었던 구절인데 "변화를 한다"라는 게 잠깐 오른쪽으로 가다 왼쪽으로 가고 그 정도가 변화가 아니라, 아예 내가 여태까지 믿고 살았던 혹은 나의 생활 패턴이나 사고방식을 그냥 다 없애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 정도의 시도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의 기존에 있었던 나의 믿음이나 신념 체계를 송두리째...
─아유, 너무 극단적이다.
─그렇죠. 물론 변화에 대한 제 인식도 조금 다르긴 해요. 그 어떤 작은 시도조차 사실 '나름의' 변화잖아요.
─그러니까 낯선 거 새로운 거를 내 구조 안에 받아들이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이미 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변화인 거예요. 쨍쨍했던 꽃잎이 시들어서 떨어지는 것도 변하고 그럼 다 변화니까요.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고 또 맹신하고 그러진 않는데 그냥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런 시각도 있겠구나 딱 하나하나만 얘기하라고 그러면 그런 시선도 있었지 원인론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었을 수 있겠지 내가 그 생각 그걸 하게 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Top-down 같아요. 프레임 같은 거 이론 같은 거 책 같은 거 해서 위에서 나를 보고 점점 밑으로 이렇게, 이렇게, 내려오는 방식이죠. 상담은 그냥 툭툭 떠오르는 일상에서의 어떤 장면들 아주 구체적인 우리 삶 그 자체에서부터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방향이 다르다는 얘기를 제가 계속해드리고 있는 거예요.
─일상에서 떠오르는 것들이라... 어렵네요.
─그게 하루아침에 안 돼요. 그렇게 지금 방식으로 대학 때부터 지금 몇 년이야... 대학 전부터 그랬을 테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을 수도 있고. 아마 되게 어릴 때부터 했겠지... 그러면은 벌써 30년, 40년 된 그런 방식인데 그게 어떻게 제 말 몇 마디로 그렇게 쉽게 되겠어요? 이렇게 계속 얘기하고 서로 실랑이 벌이면서 조금씩 준비되어 가는 거예요. 잘하고 계시는 거예요.
─어렵긴 하네요.
─본인도 따뜻할 것 같고 약간 좀 무난한 이런 성격인 면도 많이 있을 것 같고 선생님도 제가 볼 때는 근본적으로는 선하신 것 같아요. 뭐 악함이 없지 않지만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는 선하고 순수한 면도 많고 선생님도 좋은 분인 것 같아요.
─맞아요. 근데 상대가 싫어하는 거를 싫어하기 때문에 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을까라는 생각을 좀 한번 해봤어요. 그래서 그러면 내가 어떤 싫어하는 거를 상대가 했고 반대로 내가 상대가 어떤 싫어하는 걸 내가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을까에 대해서 조금 고민을 시작해 보고 있어요.
─분석은 두 번째고 우선 일상을 살면서
남이 어떻게 했을 때 내가 탁 건드려지고,
또 내가 어떻게 하니까 남편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을 좀 하시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느껴보세요.
내가 지금 뭘 느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