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안녕!

여름방학의 출석부

by 빛나다온

여름방학식이 있는 금요일.

학교엔 어디선가 풍선이 둥둥 떠다닐 것 같은 들뜬 기운이 감돈다. 복도에서 뛰어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오늘따라 더 명랑하게 들린다. 표정들은 이미 물놀이를 즐기는 여름 속으로 풍덩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출석부를 펼쳐보니 결석한 이름이 여럿 보인다. 5명이나 빠지는군 '방학이구나.' 실감 나는 순간이다. 오늘 인사를 건네고 돌아선 몇몇 아이들은 할머니 댁이나 여행지로 떠난다고 한다. 그렇게 여름은 슬그머니 돌봄 교실을 비우고 있었다.

방학 동안엔 운영 시간이 길어지지만 돌봄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조금 줄어든다. 난 오전 출근이 시작되고 더 부지런해져야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끔은 '덜 분주한 하루'를 상상하게 된다.


"선생님~" 하고 달려오던 작은 손길이 줄어드는 건 내겐 숨 쉴 여유가 생기는 것이고 아이들은 방학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잠깐의 숨 쉴 틈은 허락하고 싶다.

방학 동안 쉬게 되는 동준이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월요일부턴 저 이제 안 와요~"

싱긋 웃으며 할머니 댁에 간다고 한다.


"동준이는 좋겠네~ 할머니 댁 멀어?"
"네! 그래서 오래 있을 거예요."


그 말 끝엔 설렘이 묻어 있었다.

"그래, 방학 잘 보내고... 우리 개학하면 보자~
그런데, 동준이 보고 싶으면 어쩌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자, 아이 눈이 반짝였다.


"그럼 제가 전화할게요, 선생님~"
"그래, 너무 자주는 하지 말고 ㅎㅎ"


작년부터 내 번호를 알고 있던 아이라서 그 말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괜히 마음이 찡했다.


문득, 어릴 적 여름이 떠올랐다. 집 앞 계곡엔 맑은 물이 흐르고, 밤을 주울 수 있는 뒷산이 있던 정겨운 외할머니 댁. 고양이, 강아지가 뛰놀던 마당, 밤이면 평상에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과 옥수수를 먹으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평온했던 시간. 시원한 계곡에서 물장구치던 기억들. 그 모든 장면은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한 영화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방학이면 어김없이 놀러 오던 이웃집 친척 아이.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밥때가 되어서야 아쉬운 인사를 나누던 그 시절. 어쩌면 방학이 이어준 잠깐의 인연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방학해도 학원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예전처럼 긴 시간을 친척집에서 머무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그 느슨하고도 정겨웠던 시간이 떠오를 때면 괜히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다.


돌아보면 모든 장면이 그립다. 소나기의 한 장면처럼, 결말보다도 순간의 빛으로 남은 그 여름의 풍경은 이젠 두 번 다시 펼쳐지지 않을 마음의 고향이다.


추억이란 건 어릴 땐 마냥 신났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찡해온다.


현실의 우리는 곧 다시 만난다. 여름방학은 겨울방학보다 짧아서 개학하면 가을바람을 타고 인사를 나누게 되겠지. 하지만 그 짧은 공백을 두고도 이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교실은 덜 분주하겠지만 동준이와 다른 아이가 남긴 자취는 고요히 머문다. 의자, 사물함 이름표, 반쪽 남은 종이접기, 간식 시간에 늘 앉던 자리, 습관처럼 건네던 말투까지. 모두가 그 아이들의 부재를 조용히 증명한다. 방학은 단지 쉬는 시간이 아니라, 한 장의 그림일기를 덮고 다음 장을 준비하는 시간인 것 같다.


아이들과도 나 자신과도 이렇게 인사해 본다.

"잠시 안녕.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웃으며 지내자."


돌봄 교실 창 너머로 뜨거운 여름 햇살이 들어온다. 여름방학의 첫 문을 열었다.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게 멀어지고, 오늘의 출석부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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