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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러 다닌 날!

by bony

H엄마는 우리 아파트 6동에 살았는데 전세가 만료가 되었다.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멀리 이사는 못 가기 때문에 결국 같은 아파트의 전세를 구하러 다녔다. 혼자 다니는 것이 심심해 보이길래, 같이 따라가 주기로 했다.

"언니, 여기 아파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한 번 봐봐? 요새 전세 구경하러 집 보러 많이 다녔잖아? 어떤 집은 집이 쓰레기장이야. 그리고 어떤 집은 아예 수리를 안 해서 집상태가 안 좋고 막 그래..."

그 정도로 심하나? 아...그랬지!


H엄마가 한 말은 몇 년 전에 나의 절친인 Q와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Q도 그때 전세가 만료되어 급히 집을 구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대규모 단지의 학군지 부근 아파트를 부동산 아주머니와 함께 걸어서 다녔다.

난 그렇게 오래 걸어 다닐 줄을 모르고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갔다. 그래서 발이 많이 아팠다.

처음에 부동산 아주머니가 보여 준 집은 맞벌이 부부의 집으로 깔끔한 편이었다. 아이가 있는 방만 빼고 말이다. 그 방은 온통 장난감으로 깔려있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평생을 단독주택에서 살아서 다른 사람의 집구경을 친구집 외에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Q가 더 보여 달라고 했다. 부엌이 너무 좁아서 식탁이 간신히 들어가 맘에 안 든다고 했다. 아마도 24평 정도 됐던 것 같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여기 말고도 보여 줄 집이 많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우린 바로 다음 집으로 향했다. 그 집도 주인이 없었다. 식탁 위에 빵이 한가득 있었다. 뭐지?

아이가 학원을 갔다 오면 맞벌이라 간식을 못 챙겨주니 엄마가 빵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좀 전에 봤던 집과 구조가 비슷했다. 역시 Q는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집에 들어갔다. 한 20대 후반에 게임에 찌든 듯한 부스스한 머리를 한 젊은 사람이 컴퓨터방에서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여기야 말로 정말로 충격이었다.

거실에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쓰레기도 있었다. 누군가 방문을 하면 그래도 그런 건 좀 치우지 않나?

뭐, 그래도 거기까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기구 위에 입었던 팬티가 널려 있었다.

나와 Q는 한 바퀴 예의상 둘러보는 척하고 서둘러 나왔다.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다.

Q는 구조가 맘에 안 든다고 둘러댔다.

네 번째 집부터는 아까 봤던 그 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디나 구조는 비슷했다. Q도 똑같은 미로를 반복해서 다니는 실험용 쥐처럼 같은 집을 계속해서 방문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그만 보고 싶었다. 어차피 Q는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에너지가 넘치는 부동산 아주머니는 다른 부동산에도 전세가 나왔다며 그 집들도 보러 가자고 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 넓은 단지를 계속해서 걸어 다녔다.

나는 구두 때문에 다리가 점점 아파왔다. 그렇게 우리는 한몇 시간을 집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지쳤다. 아주 많이... 그런데 내 친구의 얼굴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Q는 나를 걱정해주기도 했다.

Q가 그렇게 체력이 좋았었나?

내가 알던 Q는 고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를 못했었다. 운동이라면 내가 훨씬 잘했었다. 그래서 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Q의 말에 의하면 학교에서 오래 달리기를 할 때 내가 Q의 손을 잡고 같이 뛰어주었다고 했다.

그런 Q인데...


우린 결국 10군데 이상의 집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에 부동산 아주머니가 우리를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분홍신을 신고 계속 춤을 춘 것처럼 난 발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아팠으니까!!!

몇 분이 지나자, Q의 집 앞 상가에 다다랐다.

나는 만신창이 지친 발을 이끌고 승용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Q가 심상치 않다.

정말로 차에서 빠르게 내린 Q는 무언가 급해 보였다.

"Q, 어디가?"

Q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나... 지금... 빵... 빵... 먹어야 해!!!! 어! 저기 빵집 있다."

Q가 급한 듯 OO바게트빵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급하게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너는 괜찮아? 빵 먹어야 하지 않아! 나 지금 당떨어졌어..."

"난 괜찮아. 어서 너 먹어! 너도 무척 힘들었구나. 내색을 안 해서 전혀 몰랐잖아!"

Q는 빵 하나만 산 후, 빵을 흡입했다.

"아~~! 이제 살 것 같아!"

나도 앉아서 발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나도 이제 살 것 같아!"


이 글을 읽자마자 M엄마는 내게 카톡을 날렸다.

나 쪽잠 잤어 ! 이제 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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