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거야~~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갑자기 엄마들의 카톡방에 난리가 났다.
서울랜드로 놀러 가자는 것이었다. 방학 동안 우리 아들을 제외한 아이들은 벌써 한 번 갔다 왔다. 이번에는 우리 아들의 학원스케줄에 맞추어서 가주었다. 엄마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의 학원스케줄을 다 빼줘 가면서까지 약속을 정해준 것이다. 고마웠다. 아들의 수학학원이 한 번 빠지면 보강이 어려워서 나는 지레 단체로 놀러 가는 것을 포기했더랬다. 역시 배려의 아이콘들이다.
운이 좋게도 서울랜드로 갈 때는 당시에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운전베테랑인 Z엄마(왕언니)의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언니는 명석한 두뇌와 우수한 공간지각력으로 안전하게 우리를 서울랜드로 안내했다. 언니와 같은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것은 행운이었다. 언니는 재력가인 J엄마의 친정어머님의 연안부두에 있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일을 할 때도 똑 부러지게 잘해서 여기저기 소문이 날 정도였었다. 그런 만능재주꾼인 언니와 같이 다니면 나는 손 안되고 코를 푸는 느낌이었다. 가는 동안 Z과 우리 아들은 서로 이야기를 했다.
"너 혹시 로블록스 해봤어?"
"창 밖에 풍경이 너무 좋다!!"
"나는 로블록스보다는 마인크래프트가 더 좋더라고, 나는 커서 건축가가 되고 싶어."
"저기 봐봐! 고양이가 지나간다!"
서로 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뭐지? 그런데 즐거워 보였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가끔 보이는 현상이다. 낯설치가 않았다.
그러자 우리 아들이 갑자기 어젯밤에 내게 혼난 얘기를 했다.
"어제 엄마가 나보고 정말 못됐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
Z이 대꾸했다.
"아~~ 그런 말을 듣다니, 너 정말 속상했겠다. 그래도 너희 엄마는 말로만 혼을 냈지! 내가 잘못하면 우리 엄마는 등짝을 때리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말하지 마! 제발!'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도 당황했지만 언니도 그랬다.
언니와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색함이 흘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서울랜드에 드디어 도착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엄마들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아이들을 놀리기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더 컸었지만...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운전도 안 하는데 운전을 하는 엄마들은 더욱더 피곤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후권을 끊었기 때문에 오후 4시에 입장을 했다. 늦은 시간이라 역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놀이기구들은 줄을 오랫동안 서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일이 없어서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여러 번 탈 수 있어서 좋았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 친구들끼리 다니고, 범버카 같은 전혀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Z, J, 우리 아들 셋이서 같이 다녔다. 그동안 엄마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아이들과 같이 놀이기구를 탔다.
그런데, 범버카를 어렸을 적에 잘 못 타서 그 뒤로 타기를 포기한 나에게 범버카를 타자고 H엄마가 내게 권유했다. 싫다고 했는데, 결국 H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거기에는 T엄마도 있었다.
T엄마는 잠시 나를 보더니 약간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언니, 잠깐만! 이제 보니 이 언니, 머리가 좀 이상한대? 언니 머리 어디서 잘랐어요?"
"어? 내가 거울보고 직접 잘랐는데, 샤기컷이야! 그렇게 이상해?"
"이것 봐봐! 이 맨날 입고 다녀서 찢어버리고 싶은 언니의 군청색 점퍼하고 이 머리. 자꾸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데..." 순간 느꼈다. 곧 엄청나게 놀림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어디 기타 없어요? 이 언니 기타 주면 딱인데!"
"뭐야? 누구 닮았길래 그래?"
"김. 창. 완! 똑같다 똑같아! 옆으로 돌아봐 언니, 내가 사진 찍어 줄게! 그럼 정말 똑같아. 약간 자유로운 거지의 느낌도 나면서..."
난 속으로 외쳤다. '창피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잖아! 그만해!' 하지만 웃겼다. 너무 웃겼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데 부인할 수없었다. 닮았다!!! 에잇!!!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같이 웃어 버렸다.
내친김에 노래도 불러주었다.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한 엄마가 웃다가 좀 지린 것 같다며 화장실에 급히 갔다.
"아우! 언니 이제 제발 미용실 가자. OO도 머리 호섭이(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바가지 머리한 조연이름)처럼 이상하게 잘라놓았더라! 사실 나도 저번에 언니처럼 H머리를 집에 이발기가 있어서 잘라봤다. 난 순간 희열을 느꼈잖아! 은근 미용이 매력 있더라! 그런데 뒷머리에 이발기를 대는 순간 느꼈어. 망했다는 것을... 그냥 훅 들어가 버려서 땜빵이 크게 생겼지 뭐야! 미용실로 데려갔더니 애머리 누가 잘랐냐며 다시는 손대지 말라고 혼났잖아! 전문가의 손은 다르긴 달라!"
이번엔 나를 실컷 놀린 T엄마가 말을 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아! 나는 저번에 어땠는지 알아? T가 수학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손도 못 대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좀 풀어줬어! 학원숙제였는데, 뭐 풀만하더라고. 아직 초등5학년이잖아! 술술 풀리더라고. 그런데 T가 수학학원에서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는 거야."
"아니, 왜?"
"내가 풀어 준 문제가 다 틀렸다면서, '너희 엄마가 풀어줬지?'라고 했대! 그러면서 다시는 엄마한테 풀어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지 뭐야! 망신당했어!"
"하하하하~~~ 그러니까 전문가에게 맡겨야 해!, 초등고학년 수학이 어렵긴 어렵구나!"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벌써 범버카를 탈 차례가 왔다. H엄마는 타기 전에 범버카를 잘 타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엔 떨렸는데 하다 보니 나도 잘할 수 있었다. H엄마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그렇게 적응해서 신나게 타고 있었는데 뒤에서 두 범버카가 나를 쿵하고 박았다. 언니와 H엄마였다.
그 둘은 나를 보더니 아이처럼 씽긋 웃어 보였다. 그 순간은 어릴 적의 순수한 나로 돌아갔다.
그 뒤로 엄마들은 춤추는 요술집에 줄이 별로 없길래 한 번 타보기로 했다. 우습게만 알았던 이 요술집은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쫄보였다. 어지러워 토할 뻔했다.
다시는 안 탔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요기를 했지만, 슬슬 배가 고파졌다.
돈가스 집으로 들어갔다. 그 돈가스 집은 밖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달에 생일인 여러 친구들을(우리 아들포함) 모두 같이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엄마들은 케이크를 따로 준비했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퇴장할 시간이 다 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우리 아들은 친구들과 같이 타고 간다며 언니의 차를 탔고, 나는 T엄마의 차를 타고 갔다.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T엄마의 차를 타지 않았다. 불길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T엄마가 운전을 잘하는 줄만 알았다.
가는 길에 T엄마는 국어선생님답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잘해주었다. 그런데...
"여기 왔던 길 같은데... 서울랜드 간판을 아까 전에 본 것 같은데..."
"어마나, 잘못 들어왔나 봐! 저쪽에서 빠졌어야 하는 건데."
T엄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언을 해줄 수 없는 나는 답답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서울랜드 간판이 또 보였다. 그렇게 3바퀴를 돌고 나서 언니한테 길을 물어본 다음에 우리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순간 사일런트 힐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어두운 한산한 도로에 안개 낀 사일런트 힐로 향하는 자동차...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순간 연출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