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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한옥마을 3부

by bony

"그거 알아? 지구는 렙틸리언이라는 외계인이 지배하고 있어. 파충류형 외계인이지. 그리고 지구는 감옥행성이래! 우리는 죽으면 환생을 하는데 죽은 후 영혼이 하늘 위로 위로 올라가다가 지구대기권에 있는 전기자기장에 충격을 받으면 현생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대? 여기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 아무도 없지?"

평소 외계인에 관심이 많은 내가 이야기를 신나게 해 주었다.

"아 네!"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재밌어했다.

"그런데 외계인이 정말로 존재해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나는 믿어. 실제로 상공에 떠 있는 UFO를 여러 대 본 적이 있거든!"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래 해지면서 신기해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함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때 그 순간 나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사기 치는 마치 '이 약을 한 번 먹어봐! 만병통치약이야! 신경통, 치통, 관절염 등등 모두 없애줘!'라고 말하는 떠돌이 약장수였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이라 좋아하고 신기했으리라 믿었다.


이렇게 내가 헛소리를 좀 하는 동안, 벌써 경기도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그날은 비도 추적추적 내렸지만, 안개가 특히나 심했다. 안갯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옥마을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몇 년 전에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의 그 숙소와는 다른 따스함이 느껴졌다. 주차장은 좀 협소했지만, 예약제이므로 주차할 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습기가 가득 찬 공기가 나의 콧 속으로 훅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신이 났다. 초등고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영어학원, 수학학원, 논술학원 등등 하교 후 또 다른 학교를 다니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공부만 했었더랬다. 놀이터에서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우연히 저녁에 학원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이들과 마주칠 때면, 어린 나이에 있어서는 안 될 다크서클을 보이며 힘없이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세상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다.

공부감옥에서 탈출해서 놀자 한옥으로 와서...

엄마들도 저녁마다 공부하라고 소리치지 않아서 행복한 건 매 한 가지였다.

아이들은 짐을 모두 풀고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먼저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한다면서 우르르르 밖으로 나갔다. 모두 우비를 입고...

M엄마와 H엄마는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를 사러 나갔다.

그런데,

"푸지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야?"

우리 아들이 장난을 치다가 창문에 있는 창호지를 찢어 먹었다. 이제 시작인가?

구석으로 데려가서 혼냈다.

그리고 조금 있다고 또

"푸지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엔 J가 그랬다.

조용히 J엄마가 J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잠시 후 술래잡기를 하던 아이들이 H가 없어졌다며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T가 술래였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찾았는데 H만 못 찾았다고 했다.

"그럼, 못 찾겠다. 꾀꼬리 해!"

"아까 전에 했어요. 그런데 계속 숨어 있어요. 어디에 갔나 봐요! 걱정돼요!"

"그래, 그럼 이모가 찾아볼게!"

나는 한옥마을 전체를 돌며 H를 찾았다. 그러다 어느 기둥 뒤에서 H를 보았다.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숨었다.

대단했다. 도대체 H는 얼마나 오래 숨어 있었던 거지? 우리 아들은 오래 숨어있는 참을성이 없어서 벌써부터 나왔는데.... 나는 그냥 H스스로가 나오게 두었다. 곧 햄버거 사러 간 엄마들이 도착했고 '저녁 먹자'라는 소리를 하자마자 H는 슬금슬금 나왔다.


이번엔 노는 거 하면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우리 아들이 파워오투 음료수병으로 물총을 만들었다. 마당에서 한 바탕 물총놀이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음료수병으로 하더니만, 아이들이 흥분했는지 이제는 바가지를 어디서 구해 와서 마구잡이로 뿌려대기 시작했다. 즐겁게 시작했던 물총놀이가 변질되어 이제는 물싸움이 되어버렸다. 몇몇 아이들이 짜증을 내더니 울기도 했다. 엄마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해!!!!"

주동자인 몇몇의 아이들이 하나씩 구석으로 끌려갔다.

분위기 점점 삭막해져 갔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J가 혼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Z가 혼나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 내가 우리 아들을 혼냈다.

물총놀이는 울음바다로 끝났다.


그리고 곧 밤이 왔다.

M엄마가 야광스틱을 여러 개를 사 왔다.

밤에 불을 끄고 야광스틱을 붙이고 춤추고 놀자고 했다.

아이들은 아까 전에 혼이 난 것을 까맣게 잊고 신나게 놀았다.

야광스틱은 붙이는데만 오래 걸렸고, 떨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일본 만화영화 노래에 심취한 여자아이들이 알 수 없는 일본어로 신나게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일본어를 어쩜 그렇게 잘하지? 신기했다.

공부할 때는 시간이 잘 안 가는데 벌써 잘 시간이 다가왔다며 아이들이 아쉬워했지만, T엄마는 아이들의 핸드폰을 모두 압수하고 잠자리를 봐주고는 이내 나왔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잤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도 각각 방을 나눠 자게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엄마들은 밤을 새울 작정이었다.

엄마들의 방에는 맥주캔과 양년치킨이 탁자에 놓여 있었다.

나는 잠깐 앉아 있었는데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너무 피곤해서...

그때는 담낭제거수술을 한 지 며칠이 안 돼서 팔뚝에 심한 시퍼런 주사 멍자국이 남아 있을 때였다.

엄마들은 다행히 나를 자게 해 주었다. 새벽 1시쯤 나는 E와 Y가 자는 방에서 남들보다 일찍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냉난방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지 방바닥이 뜨끈 뜨근했다. 여름이었는데...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T엄마가 컴플레인을 하면서 창호지가 두 군데 찢어졌다고 죄송하다고도 했다. 관리인도 냉난방시스템에 대해 죄송해하면서 창호지는 아이들과 함께 오시는 분들께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어쨌든 잘 마무리가 됐다.


이제 아쉽지만 집으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아침은 근처 유명한 메밀국숫집에 가서 메밀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영혼의 단짝인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김포에서 제일 큰 카페에 갔다.

차를 마신 후 카페를 나왔는데 아이들이 자꾸 졸랐다.

집에 가기 싫다고... 더 놀고 싶다고...

J가 울었다. 그러더니 나머지애들도 울었다.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런데 조용히 우리 아들이 다가와서 내게 말했다.

"엄마, 저는 괜찮아요. 저는 충분히 논 것 같아요."

우리 아들만 빼고 슬픔의 도가니였다.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J, Z, 우리 아들, 그리고 내가 함께 Z엄마(왕언니)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였다.

"J야, 너무 슬퍼하지 마. 다음에 또 놀러 갈 수 있어! 그때도 재밌게 놀자!"

"네에.."

나는 이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다른 얘기로 화제 전환을 했다.

"그런데 J야, 너는 엄마가 우리들 중에서 제일 예쁘다고 했다며!"

"아.. 그거요. 엄마가 자꾸 저한테 엄마 보고 예쁘다고 말하라고 해서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요, 게임시간을 더 줘요!"

"아.... 그랬구나!"

그리고 그때, T엄마의 차는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안양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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