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인 나는 요새 들어 머리가 자꾸 빠지고 있다.
머리 감기가 무서울 정도이다.
여자들은 대머리가 없다는 사실은 알지만,
간혹 길을 가다 보면 머리숱이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해 아줌마파마를 하신 나이 드신 중장년층의 여성분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다 보인다... 몇 올 없는 머리카락 사이에 반짝이는 민머리가...
아... 난 그러면 안 되는데.... 어디 가서 남에게 정수리를 보여주는 게 이렇게 창피한 일이 되어버렸단 말인가?
이게 또 유전이라, 남동생도 탈모로 고생하고 있다.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인 저주스러운 탈모와 비만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사실은 나도 내가 머리숱이 이렇게 없는지, 정수리 부분이 휑한지는 정말 몰랐다.
나의 절친이 내 정수리를 사진 찍어 보여주기까지는... 그날을 기억한다.
"야, 너 정수리가 정말 휑해? 잠깐 이리 와봐, 사진 찍어줄게!"
그때의 친구의 비웃음 소리가 아직까지도 내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거울 앞에서 자꾸 머리를 만져대며,
나도 모르게 장난꾸러기 초등학생인 아들 앞에서...
속상함을 중얼거림으로 표출했다.
"아... 휴... 대머리 같아!, 대머리..."
그때부터 아들은 나를 대머리라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짝만 주의를 주었는데,
점점 이 녀석이 멈출 줄을 모른다.
나중엔 혼을 엄청 내서 눈물 콧물 다 빼게 만들었다. 결국에는 남편까지 아들을 혼내는 지경까지 갔다.
"너, 이 녀석! 엄마를 자꾸 대머리라고 놀리면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겠어? 다시는 그러지 마!"
남편은 역시 내 맘을 잘 알아준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보슬비가 내리는 10월,
나는 아들과 나간 새얼백일장에서 상을 타게 되었다.
아들의 글쓰기 실력을 향상해 주기 위해 나간 곳이었는데, 내가 덜컥 상을 타게 된 것이었다.
사실 평소 작가가 꿈이었던 나는
내 글솜씨를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전문가인 심사위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거라 날아갈 듯 기뻤다.
비록 장원은 타지 못했어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내가 작가가 된다면 필명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하고 무심코 물어봤다.
남편이 대답했다.
“대. 머. 리”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폭력적인 자아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변검에서 얼굴이 변하듯, 화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뀔 무렵, 갑자기 웃겼다. 너무 웃겼다.
"뭐야? 아들한테 그렇게 엄마보고 대머리라고 놀리지 말라고 하더니? 나.. 참..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웃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갑자기 또 이상한 궁금증 생겼다.
“내가 만약에 키가 180cm였으면 어땠을까?”
참고로 나는 154cm의 아담한 체구이다.
남편이 말했다.
“대. 머. 리였겠지.”
며칠 뒤, 장난꾸러기 아들은 내게 책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엄마, 여기 이 사람도 유명한 작가인데, 엄마랑 머리가 비슷해!"
자세히 보니,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