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온도

by 묵상회

모두가 무너진다 해도

나는 무너지지 말아야지.

그런 말을,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다.


불이 난 집을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서

물을 들고 들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뒷모습은

정의롭다기보단 쓸쓸했고,

용감하다기보단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세상은 무너질 준비를

매일 조금씩 한다.

믿음은 가격표가 붙고,

사랑은 팔고 사는 기술이 되었으며,

침묵은 무지로 오해받고,

선한 말은 조롱받는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

뾰족하게 뻗은 말들 사이에

둥글고 둔한 내 말 한 조각을,

타협하지 못하는 내 망설임을,

소리내지 못하는 감정을

나는 내 안에 가둬두고 있다.


가끔은 묻는다.

나 혼자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게 기울어진 이 세계에서

혼자만 수직을 지켜봤자

무너지는 건 나 아닌가, 하고.


그럼에도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무너질 줄 알면서도

그 무너짐을 내 손으로는 만들고 싶지 않다.


이토록 망가져가는 세계에서

내가 끝끝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윤리도, 신념도, 사랑도 아니다.

그저, ‘이건 아니지’라는

낡고 희미한 감각 하나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각이 나를

‘멸망하지 못하는 자’로

남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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