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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로를 어떻게 자극하고, 방아쇠가 되었는지

부제_The Ghost in My Mind #18

by 이안류


관계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자극하고, 방아쇠가 되었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통제와 회피라는 두 방어기제는 상대와의 소통 방식과 미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통제의 방어기제는 주로 부인과 남 탓, 투사, 투사적 동일시의 소통 방식을 취한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 실수, 책임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문제 원인을 타인이나 상황으로 전가하는 심리적 방어다. 이렇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왜곡하여 다른 사람이나 상황 탓으로 외부 귀인하는 소통 방식은 자신의 결점이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존감을 방어하고 갈등 상황에서 심리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다른 감정으로 바꿔 말하고, 문제를 상대나 외부 탓으로 돌리고,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잘못된 해석’이라고 판단한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던지고는 상대가 그 감정을 감정을 느끼도록 조종하여 결국 상대가 짜증이나 화와 같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상대방의 감정을 왜곡하거나 무시하게 만들기 때문에 상대에게 혼란과 분노를 유발하고,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게 하며, 반복되면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무기력감을 일으킨다.




반면, 회피의 방어기제는 주로 자기 검열과 회피의 소통 방식을 갖는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면서, 갈등을 피하거나 자기 비난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회피는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는 내부 귀인과 불안한 상황을 피하려는 침묵의 소통 방식이다. 이는 갈등이나 비난을 피하고 안전을 추구하며, 관계 유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려는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불편해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하고, 갈등을 두려워하여 문제 제기 자체를 피하고,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 불편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소통 방식을 취한다. 이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의 분노가 쌓이고, 결국 폭발하거나 관계가 단절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본인은 침묵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려 하지만, 오히려 자기 가치감이 저하되고 은근히 다른 방식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수동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Two Girls in a Boat by Claude Monet




우리 둘은 통제와 회피를 주된 방어기제로 삼고 살아가며, 통제형 소통과 회피형 소통으로 결국 파국을 맞았다. 나는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며 은근히 내 탓으로 전가하며 부인, 왜곡, 남 탓, 투사, 투사적 동일시하는 X의 반응에 당황했고, 대화는 해결점을 찾지 못해 빙빙 돌았고, 끝내 대화를 이어갈 의지를 잃었다. X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나에게로 화살이 오니 말을 더 이어갈 수 없었고, X의 말이 사실인지 의심하게 되고, 내 마음이 닿는 것 같지 않아 정서적으로 멀어져 가서 고립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X가 더 이상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만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더 깊은 관계는 될 수 없다고 이미 느꼈던 것이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X는 나의 회피형 소통 방식에 따른 모호하고 불명확한 거절에 불만족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강하게 말해야 내가 확답을 줄 것이라 예상하고 더 밀어붙여 놓고는 자신이 너무 과했나 자책했을 수 있다. 실제로 X가 나에게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난 괜찮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조르지 않았으면 카페에 오지 않았었다. 또한 통제형은 회피형을 봤을 때 자신이 먼저 리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보여 주도권을 쥐려고 하기 때문에, X 또한 나를 보면 주도하려는 욕구가 일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알아서 잘 살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해 전화하는 사람은 X였지 내가 아니었다. 통제형은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지만 적어도 회피형은 침범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통제형이 보기에 남루한 경계여도 회피형에게는 소중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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