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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역전된 방어기제

부제_The Ghost in My Mind #19화

by 이안류


아이러니하게도, 통제형과 회피형의 소통 방식을 가진 우리가 이별이라는 결전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심리적 방어기제의 교차 반응이 나타났다.



X는 평소에 통제적이었고, 자신의 계획대로 사람이든 상황을 이끌고 싶어 했지만, 정작 본인이 불리해지거나 책임져야 할 순간에는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고, 원인을 나에게 전가하며, 대화를 흐리는 회피형 전략으로 돌변했다.

그래서 내가,

“그날 네가 출근하자마자 나한테 짜증을 냈잖아.”

라고 말을 하자,

“나는 그날 정말 짜증 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계약해서 기뻤어 흥분했고. 내가 기뻐서 좀 흥분한 걸 언니가 짜증 났다고 봤었나 보네.”

라고 책임을 나에게 전가하며 감정을 왜곡해 버림으로써 상황을 회피하는 전략을 썼다.




반면 나는 평소에 회피적이었고, 갈등을 피하거나 부딪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X가 결정적인 순간 부인을 하고 왜곡하자,

“오히려 기뻤다고? 흥분했다고? 내가 너를 봐온 시간이 얼만데, 네가 기뻐서 흥분한 거랑 짜증 난 거랑 구분도 못한다는 거야? 그것도 테이블 하나를 두고 마주 앉아서, 내가 이렇게 바로 코앞에서 봤는데 그것도 구분 못하고 착각한 거라고? 네가 기뻐서 흥분한 건데 나는 네가 짜증 냈다고 혼자서 씩씩거린 거라고? 너 장난하니? 이건 좀 아니지 않아? X야, 나 너를 7년을 알아왔고, 상담사야. 사람 말할 때 표정, 비언어적 메시지 다 체크하도록 훈련받은 상담사라고.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너를 내가 흥분이랑 짜증 난 것도 구분 못해서 그날 그랬다는 거야?”

라고 말하며,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 논리적으로 대항하며 정확한 감정 해석을 주장하려는 일종의 통제 혹은 교정의 욕구를 드러냈다.







왜 이런 반대 상황이 일어났을까? 이는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 방어가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X는 평소엔 주도했지만 불리해지면 자기를 보호하려고 감정 왜곡이나 회피로 전환한 것이고, 나는 평소엔 참고 넘겼지만 왜곡된 사실을 보며 더 이상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자기 확신이 생기면서 행동에 나선 것이다. 관계의 구조가 흔들릴 때 사람은 평소의 스타일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X는 관계의 지배를 잃지 않으려 회피했고, 나는 진실과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




이는 심리학 용어로 ‘역전된 방어기제(Reversal of Defense)’로, 갈등이나 위기의 순간에 사람이 평소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현상이다. 평소 지배적이던 사람은 위기 앞에서 회피형이 되고, 평소 순응적이던 사람은 위기 앞에서 저항형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X와의 이별 에피소드를 쓰면서 다시금 마음은 바닥을 치는데, 막상 글 속에는 억울함에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전달하는 내가 서있었다. 결정적인 순간,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X는 자기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우리 관계를 끝낸 사람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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