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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관계는 감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제_The Ghost in My Mind #20

by 이안류


X와 그날 결별한 후, 나는 내 후임이 쉽게 구해지지 않아 4개월을 더 근무하고 학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학원에서 같이 일한 지 4개월 만에 우리는 파국을 맞았고, 4개월 동안 서로 좁은 학원에서 그림자처럼, 마치 유령처럼 서로를 스쳐 지나며 지내다가 결국 완전히 끝을 맺었다. 마지막 4개월 간, 나는 예상보다 기간이 계속 지연되면서 심신이 피폐해져 갔다. 마음에서 멀어지려면 눈에서도 멀어져야 했는데, 일주일에 이틀을 좁은 학원에서 함께 있다 보니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기간동안 나에게 희망이 되었던 것은 더 이상 X의 계획이 아닌, 내 미래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탈선하여 엉뚱한 선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 트랙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마음이 계속 불편했었는데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며 그 사인(sign)을 무시했었다. 이별을 한 후, 나는 다시 교수님과의 연구에 더 몰두할 수 있었고, 학교 동기들을 만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박사 수료 후의 허탈감을 서로 공유하고 학위 논문 준비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정보도 얻게 되었다. X와 일을 할 땐, 내 관심 분야가 아니었는데도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X의 설득에 은연중에 넘어가며 ‘혹시 잘 될지도 몰라.’하고 합리화했었다. 그래서 일하면서도 한쪽 머리로는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계속 갈등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본궤도에 올라가 안정감이 들었고 머리도 명료해졌다. 앞으로 진행할 소논문의 주제나 일정도 계획하고, 교수님과 논문 주제에 대해 의논하고, 기존의 내 생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가끔 어세스타에서 연락 오면 강의도 하며 지냈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X에 대한 생각이 가끔 떠올랐다. 한동안 가장 자주 만났고 공유한 기억들이 많아서 곳곳에 X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X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경험들도 있지만, 나는 억누르거나 금기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X의 이름을 언급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단련시켰던 수많은 이별들이 나에게 선사한 값진 선물 중 하나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를 나름 성숙시켜 준 것이었다. 더욱이 상담을 공부하면서 상실에 대한 ‘애도 과정’의 중요성을 배웠기 때문에, 나는 더 솔직하게 X와 나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애도하고자 했다. 나는 왜 지금 이 시점에 X를 떠올리는가? 그 이유가 궁금해졌고, 애도의 일환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회차씩 써내려 갈수록 나의 감정은 다시금 재생되어 울컥해지고, 그때는 미처 몰랐던 나의 민낯을, 우리 관계의 민낯을 바라본다.



애도(哀悼)란 상실이나 이별에 대한 감정적인 슬픔이나 그리움뿐만 아니라, 그 관계가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능적인 측면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애도는 그리움, 아쉽고 미안한 마음, 사랑했지만 끝났다는 상실감 등의 감정을 중심으로 다루지만, 여기에서 그치면 감정의 표면에서 맴도는 일시적인 정리로 머물게 된다. 나 또한 친한 친구였던 X와의 이별과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도 버티다 결국 내가 관계의 끝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압도되는 슬픔과 억울함, 미움, 비참함, 수치심과 함께 회한과 미련, 상실감, 허전함, 공허감 등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누더기가 되었었다. 나는 스스로를 상담하며 그 감정을 인정하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수용했고 다독여 줬다.





그런데 관계는 감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과 기능을 함께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심리적으로 의지가 되고, 발이 넓어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결시켜 주고, 능력이 좋아 내 일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각각의 관계에는 역할에 따른 기능적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관계가 끝나면 우리는 그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이 내 삶에서 해주던 역할을 더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내 삶에 해주던 기능이 그리운 것인지에 솔직히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제대로 놓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도의 완성은 감정만 정리하는 게 아니라 관계가 내 삶에서 했던 기능적 자리까지 돌아보고, 그 자리의 공백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애도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람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난 자리’가 어쩌면 애도에서 말하는 기능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 ‘난 자리’가 어떤 역할을 내 삶에 해주었는지 그것까지 소화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애도는 상실을 통해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나는 감정적 애도는 적절히 마무리했으나 기능적 애도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 들어 X의 생각이 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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