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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최종화: 유령의 실체를 마주하다

부제_The Ghost in My Mind #22

by 이안류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의 부제목처럼 내 마음에 떠도는 유령은 'X'였다. 학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이별 후에도 4개월 동안 우리는 마주치면서도 서로를 마치 유령처럼 취급하며 지냈고, 그렇게 제대로 끝인사도 없이 관계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X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불쑥 떠오르는 생각들,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억울함과 미련의 감정은 마치 정리되지 않은 유령처럼 내 일상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애도를 하듯, 나와 X 사이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꺼내어 보고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뜻밖의 유령을 발견했다. 그 유령은 X의 형상으로 다가왔지만, 실은 ‘현실적 불안’, 그중에서도 ‘경제적 불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였다. 그 ‘경제적 불안’이라는 유령은 나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고, X와의 관계가 변질되도록 종용했으며, 때로는 나의 입을 막아 선택을 하지 못하게 했다. 유령은 조용히 다가와 ‘혹시 나중에 너한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지도 몰라’라고 나에게 속삭였고, 나는 불안을 조장하는 유령의 말에 결국 X의 제안을 승낙하는 관계를 지속했고, 결국 큰 대가를 치르며 이별하게 되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The Scream’




결국 이 글을 쓰면서 나는 'X의 유령'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이라는 유령'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유령은 단지 X의 얼굴을 쓰고 있었을 뿐, 실은 내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현실적인 두려움과 직면하지 못한 나의 내면이었다. 박사 수료까지 하면서 예상보다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나는 어느 순간 늘 경제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 장학금도 받고 일을 하면서 버텨왔지만, 돈 걱정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에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의 속삭임이 유난히 소름 끼치면, ‘내가 지금 논문을 쓸 때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이 시기가 지나면 ‘그래도 공부하길 잘했다’고 다독였다. 이 유령은 앞으로도 내 삶에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일이 뜸해지고, 미래가 불안해질 때, 나는 또다시 유령의 속삭임에 판단력이 떨어져 탈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령은 나에게만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유령이 아닐지라도, X 역시 자신의 유령과 싸우고 있었다. 그날 그렇게 차 안에서 무너져 가는 자신의 미래 비전을 보며 울부짖던 X를 떠올리면 어쩌면 나보다 더 처절하게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돈 버는 것도 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조급해했던 것을 보면 불안의 무게가 나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X는 나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그 유령을 떨쳐내고 싶어서 그렇게 미친 듯이 미래를 향해 달리고, 사람들을 모으고, 나에게도 함께 달리자고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령의 실체를 대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직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라지려 한다. 나는 유령의 실체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이 글’에 치열하게 붙잡아 두려고 한다. 앞으로 유령이 어떠한 다른 얼굴을 하고 나에게 다가와도 그 유령은 이 글의 또 다른 챕터가 될 뿐일 것이다. 나는 내 힘으로 유령에 맞설 것이다. 아마도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이겨내면 나에게 기쁨과 뿌듯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 투쟁의 기록은 내 삶의 역사가 될 것이다. ‘The Ghost in My Mind’는 더 이상 정체불명의 존재도 감정도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한 시기에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감정이며, 내가 떠안고 있었던 불안이며, 내가 이제는 인식하게 된 성장의 한 조각이다.



이제 나는 이 유령에게 작별을 고하려 한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는 있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 실체를 알고 있으니, 전과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발자국, 나를 마주하고, 앞으로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나의 과거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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