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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헤어질 때 던지는 마지막 말은

부제_ The Ghost in My Mind #16

by 이안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역적 배경이나 성장 환경에 따라 독특한 언어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X도 나에게 그러한 경험을 주었다. X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벌어주다’라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X는 가족들과 학원 일을 하다가 마지막에 정리했을 때, 돈을 각자 나눠서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동생에게 얼마의 금액을 ‘벌어줬어’라고 표현했다. ‘벌어주다’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돈이나 수입을 대신 벌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X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독특하고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X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몇 차례 참여했던 강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해 보니 작년에 자신이 그 강사에게 얼마를 ‘벌어줬더라고’라며 또다시 그 표현을 무심결에 사용했다. 그때 나는 그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 강사는 X의 오래된 친한 지인이었는데, 열심히 돈을 벌 생각이 없어 보여서 X가 보기에 늘 답답했다. 그래서 X가 사업을 하며 사람이 필요할 때 그 강사에게 일을 해보라고 강의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월세는 어떻게 내고, 생활비는 어쩌려고 저렇게 태평하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면서, X는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 강사에게 작년에 내가 총 얼마의 돈을 벌게 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의미가 이해되는 순간 난 그 자리가 불편했다.




나도 X의 사업에 강사로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었고, 현재도 내년의 큰 프로젝트를 위해 사전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강사에게 해주었던 말이 평소에 X가 나를 걱정해 주면서 했던 이야기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마치 그 돈 벌 생각이 없는 ‘답답한 강사’가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강사와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강사를 만난 적도 있고 워낙 많은 이야기를 이미 전해 들어서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기준에는 그렇게 답답하고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었고 나름 자신의 능력으로 강의와 상담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X가 많이 의지하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X가 그 강사를 현실적으로 걱정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내가 얼마를 벌어줬다’는 표현은 내게 좀 충격이었다. 자신이 벌어주지 않았으면, 마치 살아갈 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처럼 그 강사를 만들었고, 자신을 호혜적인 사람으로 격상시켰다.



“네가 도와주지 않아도 그 강사는 먹고 살아왔잖아? 그리고 그분이 수업을 했으니까, 일을 했으니까 돈을 받은 거고.”

“응, 맞아, 언니.”

마치 그 강사의 입장인 것처럼 나는 항변했다. 나도 X가 그렇게 보고 있나? 순간적으로 마음이 내려앉았다. X는 지금 자신의 말에 내 머리가 지진이 났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써 온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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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 사람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의도하지 않고 무심코 한 말속에 가치관이 스며있다. 그런데 X는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노동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 것을, 자신이 ‘벌어줬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나는 지금껏 일하면서 이런 말을 들으며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내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했지, 사장님이 혹은 원장님이 벌어줬다고 생각해 본 적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 사장이 직원들에게 ‘내가 얼마를 벌어줬는데!’라는 대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때 장면은 대개 직원들에게 자신이 일을 할 기회를 주었고, 먹고살게 해 줬는데 배은망덕하게 사장에게 대든다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대사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맴돌았다. 설마 그런 의미로 X가 쓴 것은 아닐 거라는 부인과 혹시 그런 마음이 있으면 어떡하나라는 의심과 걱정이 연무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그 불편함을 털어내려 나는 머리를 내저었다. ‘X가 취업 경험이 거의 없이 가족들과 사업을 해서 그럴 거야’. ‘어쩌면 부모님이 그러한 표현을 써서 별 뜻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걸 거야’. 나는 애써 다른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X가 나에게 “어세스타는?”이라고 물음을 던졌다. 이는 내가 X에게 할 만큼 한 것 같다고 말한 문맥의 흐름에서, X가 내게 비수를 꽂기 위해 신중하게 고른 최후의 반격이었다. X가 나에게 해준 게 무엇인지 떠올려 보라는 말이었다. 즉, ‘어세스타’라는 말은 X가 어세스타를 소개해 줘서 내가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어세스타라는 경력을 만들어줘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공로를 두 눈으로 보라는 뜻이었다. 여기에 어세스타뿐만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제안했던 사업이나 프로젝트, 그리고 이곳 학원까지 생각해 보라는 말이었다. X의 표현을 빌자면, 나에게 돈을 ‘벌어주었다’는 의미였다.




난 듣자마자 그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 도움을 준다고 해주었던 제안이 비수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 순간 설마 하며 우려했던 것처럼, 나는 X에게 그 ‘답답한 강사’처럼 돈 벌 생각 없는 머리만 꽉 찬 무능한 사람이었다. 허탈감에 웃음만 나왔다. 내가 X의 프로젝트나 사업까지 참여하여 정말 돈을 받기라도 했다가는 나에게 돈을 ‘벌어준’ 것을 넘어서, 먹여 살렸다고 말하며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 같았다. 지금도 학원에서 돈을 받고 있으니 이 또한 X가 ‘벌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일해서 월급을 받은 것이고, 아직 프로젝트나 사업에 사전 작업으로 에너지만 쏟았지 아무런 대가도 받은 것이 없는데, X는 이미 내가 자기 덕분에 먹고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결국은 이거였구나 싶었다. 헤어질 때 던지는 마지막 말은 이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마지막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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