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_The Ghost in My Mind #15
X가 자신은 흥분했지 짜증은 나지 않았었다고 말했을 때, 이미 우리 관계는 끝났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었다. X의 말이 옳다면, 나는 상담사이자 심리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오래 알아 온 친구를, 그것도 최근에는 일주일에 이틀 이상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일하는 친구의 기쁨의 흥분과 짜증이라는 상반된 감정 표현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앞으로 X를 만나더라고 X가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는데 확신을 가질 수 없어 매번 신경이 곤두서게 되어 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정서 표현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특히, 공포, 분노, 놀람, 혐오, 기쁨, 슬픔 같은 기본 감정(basic emotions)은 진화적으로 생존과 직결된 감정이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생존과 번식의 성공률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감정 표현은 진화적으로 신호이자 비언어적인 약속의 언어다. 그래서 주관적인 강도의 개인차는 존재할지언정 완전히 반대로 이해되기 어렵다.
맹수를 보고 느끼는 두려움을 우리는 기쁨의 놀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흥분한 사람을 보며 우리는 기쁨을 함께 나누려 달려가지 않는다. 얼굴 표정은 그래서 언어보다 더 솔직하다. 그런데 X는 자신의 표정은 다르며 내가 착각했다고 했다. 물론 짜증 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마음이 안 좋았거나 언짢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기쁨이 되지는 않는다. 정말 X가 기뻤다면 X는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을 다시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X의 말대로 ‘나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계속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옳았다면 어떨까? X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오히려 불화의 원인을 나로 만들어 버리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친구 관계의 신뢰를 잃어 파국을 맞을 것이다. 결국 X가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고 진솔하게 말하지 못한 행동은 내가 친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짜증 난 건 아닌데 좀 마음이 안 좋긴 했었어. 그런데 언니한테 그렇게 들렸을지는 몰랐어, 미안해 언니.’라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나는 입을 삐죽이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안아줬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화는 계속 돌고 돌아 서로의 탓으로 끝났다. 더 이상 다툼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졌다. 우리가 끝났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X가 이렇게 물어보는데, 이제 끝도 내가 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 둘의 관계가 얽혀있는 것을 X도 잘 알고 있으니,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너랑은 일 안 해. 너의 일에서 다 빠질게. 학원은 내가 원장님께 말씀드릴게.”
나의 말에 고개 숙인 맹수 같던 X의 표정은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지금 이 상태에서 내릴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정말 이 모든 불행의 원흉으로 철저히 선택된 사람이었다. 나는 X의 일에 가담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내빼버린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남아야 이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슬프지만 내 책임도 있으니 감수할 뿐이었다.
“설마 이 분위기에 같이 일하게?”
나는 차라리 못된 년이 될 바에는 철저하게 못된 년이 되어 빨리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X를 위해 1그램의 의무감도 이제는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를 실컷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러자 X는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며,
“모든 일에서라고 했다?”
라고 낮게 물으며, 이 물음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냐고 표정으로 말했다.
“응, 모든 일”
나는 똑바로 X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모든 일이라는 것은 프로젝트 참여는 물론이고, 내년에 함께 하기로 했던 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X가 꿈과 희망을 주입했던 예정된 일을 나는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 일로써 나에게 생길 수 있는 경력과 금전,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자, X의 꿈을 훼방 놓는 원수로 길이 남는 선택이었다. 나는 목소리와 눈빛만으로 X의 마음과 의도를 잘 읽고 있었다. 그 정도로 서로 한동안 얽혀 지내온 사이였기 때문에 나도, X도 서로의 상태를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동안은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마지막에 X에게 한숨처럼 말했다. 정말이었다. X를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같은 공간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정말 이곳을 벗어나면 X와 끝이구나 생각하니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힘들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 조금은 괜찮아져서, 그래도 오며 가며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었는지 ‘한동안은’이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다고 하니 할 말이 없네.”
나의 말에 X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평생 이런 말을 마치 처음 들어봤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아.”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 말했다. 난 정말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주고, 물어보면 아이디어를 주고, 힘들면 공감해 주고, 짜증을 받아주고, 성공하면 네가 최고라고 엄지 척 해 주는데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그러자 X는 내 말에 분노를 삭이며 낮게 말했다.
“그럼 어세스타는?”
그 말과 표정에서 나는 이것이 최후의 일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상처주기 위해 일부러 고심해서 던진 동물적인 본능의 말이었다. 나는 할 만큼 했고 그래서 지쳐서 너를 한동안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나의 힘듦을 알아달라는 호소였다면, X의 말은 명백한 공격이었다. 나의 불안과 나의 약점을 건드리는 치명적인 독화살이었다. 그래서 너무도 슬펐다. 지금까지 X가 말한 무수한 데이터들 속에서 어떠한 맥락에서 X가 이런 표현을 쓰는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즉시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관계로든 우리는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