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이지 간수가 아닙니다.

이 글은 잘 간수해 두죠.

by 천천희


교도관은
바로 잡고 이끈다는 뜻이다.

바로잡을 교 矯
이끌 도 導.


더 이상 가두기만 하는 '간수'가 아니다.




현상 유지합시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오늘 밤도 잘 부탁합시다.



처음 발령받은 교도소에서 일할 때 야간 근무 투입 전, 어김없이 계장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말이다. 계장님의 책상에는 읽히지 않은 수용자들의 면담 요청 보고문(수용자가 근무자에게 쪽지로 건네는 각종 신청서)이 책상 구석에 쌓여있다.


'왜 저렇게 ‘*현상 유지, 현상 유지’ 그러시지?'

*계장님의 ‘현상 유지’ : 현 상태를 유지하자. 가만히 있다 가자.



그렇게 나는 사동 근무를 시작한 지 몇 달쯤 되었을까.

야간 순찰을 하던 중에 나에게 '가만있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

항상 기분 나쁜 냄새와 스산함이 감도는 중경비 사동이었다.



"주임님"


대식(가명)씨였다.


"뭐죠?"


"면담하고 싶습니다"


"갑자기요?"


"*관구팀장님이 제 말 듣지도 않습니다."

*관구팀장 : 관할 사동의 책임 계장.


"무슨 일인데요?"


"그냥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막힙니다. 의료과 *바이탈이라도 재고 오고 싶은데"

*바이탈 체크 : 혈압, 체온, 맥박, 호흡 등 기본적인 활력징후 체크


"알겠어요, 얘기해 볼 테니까 마음 편히 좀 있어봐요"


대식 씨가 면담요청 한다고 보고하니 계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냥 냅 둬요. 사람 안 바뀐다. 콧구멍에 바람 좀 쐬고 싶은 거지. 할 말도 없는데 그냥 나오고 싶은 거니까."


나로서는 어떻게 해 줄 방법은 없었다.
직속상사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계급 문화를 가진 곳이 이곳이니까.


내가 팀실을 나가지 않고 어슬렁 거리자 계장님은 내가 수용자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고민하고 있는 걸 아셨는지 다시 말씀하셨다.


"사기 7범이랑 무슨 얘기를 하냐. 있는 그대로 말해줘요. 야간에는 출실 안되니까 날 밝으면 의료과 가서 하자고"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계장님은 쉼 없이 딸깍딸깍 마우스 소리를 내며 화면만 쳐다보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뭘 그리 수용자랑 대화를 하려고 해요. 우리는 상담해 주는 사람이 아닌데. 요구 들어보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이제 할 말만 하고 딱 돌아서요. 우리는 못 도망가게 지키면 되는 거야."



그날 밤, 대식 씨는 방 밖으로 나오기는커녕 아무도 면담하러 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 안 바뀝니다. 하던 거 하시죠.



수용자들의 운동 시간.

모두가 햇살 한 번 받으려고 30분의 출실 운동을 나간다. 그늘씨만 빼고.

그늘씨는 오늘도 안 나간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늘씨, 오늘은 좀 나갑시다."


"아니여유. 나는 나가서 할 것도 없어유"


"햇빛을 쐬줘야 생물이 광합성도 하고, 우울한 것도 좀 빼지.."


"사람 안 바껴유..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랍니다유, 좀 냅둬유"


"내가 그늘씨 살이 쏙 빠져가는 걸 냅둘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나와봐요"


"주임님 하던 거 하시죠~ 저 신경 마유"


"(능청스럽게) 제가 하는 게 이건데요 뭘, 나오세요"


그늘씨의 한숨 소리가 복도 바깥까지 들린다.

"휴~"


그늘씨는 잠깐 망설이더니 마지못해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온다.

귀찮음과 짜증남이 한 데 모인 미간도 함께 챙겨서 내 앞에서 보여준다.


"알겠으니까 하하, 한 바퀴 돌아보자고요"


결국 그늘씨는 운동장에서도 남들 다 뛰는 햇빛으로 가지는 않고 추운 그늘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이내 팔 속에 얼굴을 묻는다.


"들어가고 싶어유."


"그렇게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운동 끝나면 들어갑시다"


첫날에는 10분 만에 들어가고 싶다고 나에게 보채더니 다음에 데리고 나왔을 때는 20분을 버텼다.
그다음 세 번째 만난 날은 30분의 운동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들어가고 싶다는 말 없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얼굴은 그늘 속에 파묻지 않고 하늘도 쳐다보고는 했다.


어수룩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늘씨가 이번에는 나에게 먼저 말도 건넬 줄 안다. 단어단어마다 뜸을 들이면서 얘기하는 그늘씨.


"어..주임님 어.. 종교가 뭐예유?"


"어.. 주임님.. 저도 기독교인이에유"


"주임님.. 어.. 사실은 저는 교회에서..어.. 드럼도 쳤어유"


그늘씨와 내가 3번의 운동을 함께 하면서 그늘씨는 활기라는 걸 나에게 비춰줬다.

잠깐이지만 분명히 얼굴에 빛이 보였다.

'낯빛'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생겨난 건가?



나는 수용자를 지켜보기만 하려고 교도관이 되지는 않았다.


보고만 있으려면 여기 오지도 않았다.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게 진정 교도관인가?


나는 교도관이지 간수가 아닌데.






내가 수용자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하던 거 하라고요? 하던 게 이겁니다."



("다른 분들은 다 된다는데 왜 주임님만 안된다고 하십니까"라는 말에)

"그 근무자는 그 근무자고 나는 그리 못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는 죄수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던 사람들을 '간수(看守)'라고 칭했다.

'지켜보고 지킨다'는 말이다.

주된 역할은 수용자를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고, 강압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

차갑고 권위적인 느낌의 '간수'는 죄수들에게 삶의 본보기나 정도의 길은 보여주지 않았다.


광복 후,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그들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간수'라는 일제 잔재의 억압적인 용어를 청산하고, 구체적인 연도는 법령 개정 시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960~1970년대 이후를 기점으로 '교도관'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교도관(矯導官)'은 '바로잡고(矯) 이끈다(導)'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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