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여행의 경유지

다시 경유지로 돌아가며

by 지썬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인 도하공항에 내리자 건물도, 공기도, 조명까지도 기름 냄새와 금 냄새가 섞인 듯했다. 콜라 한 캔에 7천 원. 지폐가 휴지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알마하 라운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아침 5시부터 8시까지는 피크타임이라며 자리를 기다리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그때, 한 일본 여성분이 혼자 테이블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두 달 전 다녀온 일본여행에서 지금까지 연락하는 일본 친구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기다릴 여유는 없었기에 함께 식사를 해도 될지 말을 걸었고, 그녀는 내게 흔쾌히 앉으라며 어디로 가는지, 서로의 나라로 여행 갔던 이야기도 슬쩍하며 함께 밥을 먹었다. 배를 채운 뒤 조금은 피로가 가신 채로 카타르 공항을 천천히 나섰다. 거대한 곰 인형 아래서 혼자 셀카를 찍으며 앵글을 맞추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낑낑대고 있는 찰나, 중동 쪽에서 온 것 같은 외국인 한 명이 가방 하나와 느긋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내가 찍어줄까요?”

나는 순간, 망설였다.

‘혹시 이 사람이 내 핸드폰 들고 튀면 어쩌지…’


낯선 환경에서 자동으로 켜지는 경계심. 그것은 단순히 ‘도난 위험’ 이상의 것이었다. 혼자 여행을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엔 이런 경계를 덜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사회가 끊임없이 경고하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세상을 잠재적 위험으로 계산해 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신은 피로와 낮섦 위에서 빠르게 자라는 만큼 금세 사라지기도 한다. 생각을 깊이 굴릴수록 그 무게가 나를 짓눌러 오히려 가벼운 믿음 쪽으로 기울게 된다.


짧은 의심 뒤로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건넸고, 다행히도 그는 구도를 섬세하게 맞추며 사진을 잘 찍어주었다. “당신도 찍을래요?” 하고 묻자, 그는 얼굴을 활짝 피우며 웃었다. “사실, 그걸 바란 걸지도 몰라요.” 귀여운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능과 누군가를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며, 그 경계가 흔들릴 때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경계심을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기, 우연이 필연처럼 이어지는 만남.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이 새롭게 빚어지듯, 여행 역시 세상을 탐색하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경유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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