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걸음

영문을 모르겠는

by 복순이

2025년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아이들과 요가하는 날이다. 지난번 완성하지 못한 영어요가를 다시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센터로 향했다.


교실에는 아이 두 명과 아이들 할머니뻘 연세의 자원봉사자까지 3명이 전부였다. 꽤나 단출했다. 흰 피부의 점잖은 남자아이는 독감에 걸렸다며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옆엔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생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아이는 그보다 형이라고 했다.


어느샌가 담당자가 "너도 요가해"라며 덩치 큰 남자아이를 교실로 들여보냈다. 웃으며 들어오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오늘도 그는 말이 없었다. 혼자선 수업에 참여시키기 어려운데 담당자는 그를 두고 나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교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는 덩치 큰 남자아이 옆에서 나머지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했다.


목 돌리기부터 팔과 다리 풀기까지 비교적 그럴싸한 준비운동을 마쳤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준비운동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시작이 좋다고 생각했다.


흰 피부의 점잖은 남자아이가 오늘도 지난번에 한 게임을 할 거냐고 물어봤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리곤 처음 만난 생머리의 안경을 쓴 남자아이를 위해 한글요가부터 복습하자고 했다.

기역부터 천천히 한 동작씩 따라 해 보았다. 니은, 디귿의 순서로 이어지는 동안 양갈래 머리의 소녀가 교실로 들어왔다. 자주 교실을 들락거리는 아이라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주로 문 앞에서 문을 열고 닫거나 교실 뒤편에서 손가락을 입에 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한글요가를 마친 뒤 복습 겸 게임을 제안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멈추면 특정 동작을 하는 게임이었다.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시옷!"

흰 피부의 점잖은 남자아이가 엉거주춤 엎드리자 생머리의 안경을 쓴 남자아이도 그를 따라 엎드렸다.

"너도 해봐"

자원봉사자 어르신이 양갈래 머리의 소녀에게 권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가지 자음을 더 따라 해 본 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넘어갔다. 설명을 마치고 다시 노래를 불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 반복되는 동안 생머리의 안경을 쓴 남자아이는 계속해서 점잖은 남자아이에게 매달렸다. 아이를 떼어놓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피로가 몰려왔다.

"너도 따라서 해봐"

자원봉사자 어르신이 양갈래 머리의 소녀에게 권했지만 그녀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동물요가를 하자고 했다. 생머리의 안경을 쓴 남자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올라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동물요가를 하자고 하며 나비자세부터 알려주었다. 강아지 자세로 넘어가자 멍멍 소리와 함께 생머리의 안경을 쓴 남자아이가 점잖은 남자아이에게 또다시 엉켜 붙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고양이, 뱀, 독수리 자세에서도 아이는 계속해서 점잖은 남자아이와 몸싸움을 하려 했다. 친구가 힘들어하니 그만 괴롭히라고 타일렀다.

"해봐, 너도 독수리 해봐"

자원봉사자 어르신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양갈래 머리의 소녀는 허공을 응시할 뿐 여전히 답이 없었다.


어떻게든 수업을 끝낼 요량으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이번엔 한글요가와 동물요가를 섞어서 해보자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 반복되는 동안 남자아이들은 계속해서 서로 엉켜 붙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어르신은 꾸준히 양갈래 소녀가 게임에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너도 해, OO(양갈래머리 소녀)아"


내가 술래가 되었을 때 교실로 누군가 들어왔고 이를 본 자원봉사자 어르신이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환영합니다 박수쳐줘! 박수!!"

흰 피부의 점잖은 남자아이가 "환영합니다" 하며 박수를 쳤고 옆에 있던 남자아이도 얼떨결에 함께 박수쳤다.

"사랑해요 박수!!" 자원봉사자 어르신이 말했다.

흰 피부의 점잖은 남자아이가 "사랑해요" 하며 박수를 쳤고 옆에 서 있던 남자아이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환영의 박수가 오간 뒤 나는 아리송한 마음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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