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깊어 가는 존재의 심연
‘딩동’.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 도어벨이 울렸다.
‘치킨인가?’
아니었다. 문 앞엔 황토색 박스 하나, 송장을 입고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금요일 오전에 주문한 아이패드 커버, 쓰던 건 아주 멀쩡했다. 그냥, 도파민이 필요했을 뿐이다.
몇 분 뒤, 다시 ’딩동‘.
이번엔 맞았다. 요기요 쿠폰으로 할인받은, 갓 튀긴 치킨. 침샘을 압박하는 튀김향이 코를 타고 들어왔다. 토요일을 감칠 나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 아니, 그렇게 나를 속이고 있었다.
필요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했다. 순간의 소비는 마음속 공허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산다. 살기 위해 사는 건지, 사기 위해 사는 건지, 나조차 헷갈린다. 치킨을 먹은 다음, 반사적으로 유튜브를 켰다. 딱히 볼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쇼츠를 넘겼다. 집중도, 재미도 없었다. 그저, 잠들기 전까지 시간을 지웠다.
다음 날 7시 알람, 씻고 회사에 도착하면 8시쯤. PC 전원을 켜면, 어제 끝내지 못한 보고서, 쌓인 요청 이메일, 상사의 지시사항. 이 모든 것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안전모를 쓰고 위험 시설을 점검하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보고서를 쓴다. 반복, 또 반복.
되풀이되는 일상을 깨는 약간의 일탈은 오직 회식뿐이었다. ‘카톡‘.
“지온 선임, 오늘 시간 어때요?”
장 책임의 연락이다. 나와 동갑내기지만, 직급은 책임인 파트 리더. 술을 좋아한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술을 빌려 고독을 달래고 싶었을까. 주변에 연락을 돌리다, 실패했을 때 찾는 마지노선. 바로 나였다. 난 미혼에 숙소 생활자이니, 내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콜’.
“특별한 일정은 없으니 가시죠, 지난번 양꼬치집 괜찮던데.“
”일단 내가 찾아보고 연락 줄게요.“
가게 안은 양고기 냄새와 대화소리로 가득했다. 우린 고기를 굽고 술잔을 비웠다. 장 책임은 업무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 매번 같은 레퍼토리. ”결혼 언제 할래, 가족이 최고지“라면서도, 지금 더 가까운 건 술잔이었다. ‘건배’ 소리는 크게 울렸지만, 채워도 채워도 비워지는 잔을 보며, 그의 심연을 보았다.
나 역시 그 심연에서 허우적거렸다. 그건 친구, 가족 또는 배우자의 유무와 관계가 없었다. 태어나는 순간, 삶의 무게를 짊어지기 때문이다. 정답도 모범답안도 없는 첫 경험과 선택지 앞에서, 나는 오롯이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마음 깊은 허기를 채우려 하루를 썼다. 아무것이든 그 빈틈에 밀어넣었다. 하지만 채워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 빈자리는 자본주의적 소비가 채우기 시작했다. 집에 쌓인 택배를 한꺼번에 뜯는 날. 물건보다 테이프 뜯는 소리와 비닐 터지는 촉감에 더 쾌감을 느낀다. 물건은 그대로 두고, 포장 쓰레기만 가득 쌓인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유명한 홈카페 머신을 충동구매했다. 한 번 커피를 내린 후 귀찮아서 방치. 그 후에도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내가 가진 물건이 더 나은 줄 알면서도 계속 비교하게 된다.
나의 내면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니 더 커져만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깊이가 결국 나를 집어삼키는 줄도 모른 채, 또다시 쿠팡앱을 열었다. 화면은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은 내 안으로 스며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