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엔, 누가 망치를 들게 될까

by 홍종원

작가 미상의 단편 『루드 대위의 밤』중에서


그날도 비가 내렸다. 가랑비는 지붕의 구멍을 타고 토머스의 손등으로 흘러내렸다. 그가 손수 방직기를 돌리던 움막 안은 습기와 눅눅한 숨소리로 가득했다. 아내 엘리너는 낡은 실타래를 풀며 중얼거렸다.
"이젠 이마저도 팔 수 있을까..."
방직기로 하루 종일 실을 짜도, 받는 돈은 빵 한 덩이 값이 되지 않았다.


예전엔 달랐다. 토머스는 한때 마을에서도 이름난 직조공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짜인 옷감은 귀족의 어깨에 걸렸고, 그 이름은 상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외곽의 거대한 공장에서 돌고 있는 기계가 그의 명성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그 공장엔 두세 명의 젊은 남자들이 자동 방직기 앞에 앉아 하루에도 수십 벌의 옷감을 뽑아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속도, 지치지 않는 손. 그리고 토머스는 점점 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갔다.


마을은 무너졌다. 일을 잃은 남자들은 낮에도 술에 취해 있었고, 아이들은 헛기침과 굶주림에 잠에서 깨곤 했다.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기계는 사람의 삶을 훔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토머스는 오래된 헛간에서 마을의 몇몇 남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빗속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망치를 들고일어났다.
"오늘 밤... 그 기계에게 죗값을 물어야 해."
"루드 대위의 이름으로."
낮에는 평범한 장인, 밤에는 복면을 쓴 심판자들. 그들은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가 퍼붓는 어둠 속에서 공장으로 몰래 들어간 남자들은, 마치 종교의식처럼 기계 앞에 섰다. 토머스가 처음 망치를 들고 기계를 내리쳤을 때, 쇳소리와 함께 내장처럼 튀어나온 톱니바퀴가 바닥에 떨어졌다. 누구가 기계에게 속삭였다.
"너는 죄를 지었어. 우리의 일을 훔쳐갔어."
그리고 또 하나의 기계가 부서졌고, 또 다른 기계가 찢겨 나갔다. 그날 밤, 그들은 세 대의 자동 방직기를 '처형'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루다이트(Luddite)"라 불렀다. 그들은 실존하는 인물이었을까? 그들은 '루드 대위(Captain Ludd)'의 이름 아래 모였지만, 루드는 전설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의 절망과 분노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기계는 적이었다.


그들은 기술이 아닌 질서에 맞섰다. 값싼 기계를 사들인 부자들은 이익을 챙겼고, 노동자들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예전엔 하나의 옷을 짜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정성 들였지만, 이제 기계는 감정도, 의미도 없이 천을 찍어냈다. 기계는 질서를 무너뜨렸고, 공동체를 찢어버렸다.


하지만 국가의 칼날은 노동자들을 향했다. 1812년, 정부는 기계를 파괴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군대가 마을로 들어왔고, 체포된 루다이트 중 수십 명이 재판도 없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노팅엄, 요크셔, 랭커셔.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토머스는 그날 이후 다시 방직기를 돌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무서워했고, 기계는 더 많이 들여왔다.


그러나 이상했다. 파괴된 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자존감이었다. 루다이트의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사람들 사이엔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사는 그들을 반 기술적인 폭도로 기억했지만, 그들이 진짜로 두려워했던 건 기계가가 아니라, 기계가 인간보다 먼저 선택되는 사회였다.




루다이트.
교과서에는 종종
“기계를 부순 폭도”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생존의 절박함,
그리고 무너진 자존감이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방직 노동자들은
단순히 기계가 싫어서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보다 먼저 선택되는 사회의 구조였다.


당시 영국 정부는
기계 파괴 행위를 사형으로 다스리겠다고 법을 세웠다.
군대가 마을로 투입되었고,
수십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루다이트 운동은 그렇게 진압되었지만,
진짜로 사라진 건 저항이 아니라, 목소리였다.
그리고 질문은 여전히 남았다.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늘, 우리는 또다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자동 방직기가 아니라, 인간형 로봇이다.
단순 반복 노동을 넘어,
말하고 듣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계.


이번에는 블루칼라만이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변화다.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루다이트들의 이야기를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묻게 된다.


이번에는 누가,
망치를 들게 될까?




작가 미상의 소설 『마지막 출근』 중에서


2042년 봄, 자율주행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루이스는 다시는 그 공장의 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주, 마지막 인간 부서가 해체되었고, 그는 단 한 통의 문자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생산성은 유지되었고, 당신은 필요 없어졌습니다."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로봇은 쉼 없이 부품을 조립하고, 검사하고, 적재했다.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실수도 없고, 월급도 필요 없었다. 매달 실적은 오르고 있었고, 주가는 8개월 연속 상승세였다.


그는 손에 쥔 출입증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 문 옆의 철제 통에 던져 넣었다. '딸깍'하고 출입증이 떨어지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그날 이후, 루이스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몸은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마음은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했다.


정장을 입고 거울을 본 적도 있었다. 넥타이를 매던 손은 멈췄고, 그는 한참을 서 있다 결국 넥타이를 풀었다. 자신이 더는 어디에도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의 손이 먼저 알고 있었다.
"아빠, 언제 다시 회사 가?"
열 살 된 딸아이가 물었다. 루이스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젠... 다른 일을 해야겠지."



하지만 무슨 일을? 어디에서? 그는 지난 20년간 그 공장에서만 일했다. 기계보다 빠르게 조립선을 따라가며, 미세한 소음을 감지해 고장을 예측하는 능력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고장은 예측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되는 것이다.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시대. 그의 경험과 감각은 더 이상 자산이 아니었다.


그는 구직 사이트를 뒤졌지만, 요구하는 조건은 대부분 'AI 시스템 설계 경험', '로봇 관리 알고리즘 숙련자' 같은 단어들로 가득했다. 인간을 관리하던 자리는 사라지고, 로봇을 다루는 인간만이 남았다.


루이스는 거리로 나갔다.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공원을 청소하던 중년 남성도, 주차장을 관리하던 노인도 모두 한때 다른 업계의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들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 중이었다.


어느 날 그는 뉴스에서 본 익숙한 장면을 떠올렸다. 노티엄의 한 박물관에 전시된 루다이트 망치, 200년 전, 기계에 저항하던 노동자의 상징. 루이스는 생각했다. 그때 망치를 든 이들은 무식하거나 시대를 거스르려던 자들이 아니었다. 단지, 너무 빨리 버림받은 자들이었을 뿐이다.


그날 밤, 그는 딸과 함께 자리에 누웠다. 딸은 작은 손으로 루이스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아빠는... 무슨 일을 잘해?"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엔 자율주행 배달 드론이 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밤하늘엔 별보다 많은 기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겐 목적지가 있었지만, 루이스에겐 없었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마음속에서 울렸다. 이번엔, 누가 망치를 들게 될까?




작가 미상의 소설

『2047년 가을, 무너진 도시의 거리에서』 중에서


아이작은 더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손에 쥔 건, 부러진 로봇 팔 하나였다. 철골 안쪽으로 갈라진 회로에서 기름이 배어 나왔다. 어쩌면 어제까지만 해도 이 로봇은 도심의 호텔에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로봇을 쓰러뜨린 뒤에도 몇 초간 망연히 서 있었다. 로봇은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빼앗은 건, 결국 그들이었다.

공장 노동자였던 그는 4년 전 해고되었다. 처음엔 농담 같았다. 인간형 로봇이 용접을 더 잘하고, 야간근무도 가능하며, 보험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지만 농담은 현실이 되었고, 어느 날부터 '사람'을 채용하는 공고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 그는 빈민촌 임시거주지 3지구 12번 컨테이너에 살고 있다. 하루 끼니를 경우 해결하며, 정부의 생계지원금으로 연결하지만 그것도 이달로 중단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부는 세금이 바닥났고, 더 이상 아무에게도 줄 수 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끊임없이 "로봇세 도입"과 "기본소득 확대"를 논의하던 국회가 나왔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오히려 국회 의사당 주변은 며칠째 시위로 봉쇄된 상태였다. 전직 간호사, 운전기사, 콜센터 상담원, 편의점 직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기계에게 빼앗긴 삶을 돌려달라!"


얼마 전에는 대규모 방화가 있었다. 로봇 생산공장 세 곳이 불에 탔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B사의 로봇 물류센터였다. 그곳에선 200여 명의 실업자들이 일제히 난입해 로봇들을 파괴했다. 현장에 충돌한 경찰도 제압하지 못했고, 결국 군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터졌고, 마트는 텅 비었으며, 상점 유리는 깨졌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했다.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이미 통제력을 잃은 뒤였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병원은 약이 부족했으며, 도시는 점점 기능을 멈춰갔다.


어느 날 밤, 아이작은 노숙자 쉼터 옆에서 만난 한 노인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이 세상은 무너진 게 아니야. 우리가 너무 늦게 깨달은 거지. 사람 없이도 돌아가는 사회는, 결국 사람을 버리는 사회였다는 걸..."
그의 말처럼,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 문제는,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회의 시스템이었다.




이 소설은 과장된 상상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인간 없는 산업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AI는 이 로봇들에게 눈과 귀, 그리고 뇌를 주었다.
이전에는 정해진 동작만 반복했다.
이제는 주변을 감지하고, 상황에 따라 알아서 행동한다.
예측, 학습, 판단, 감각 등 인간이 가진 강점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직업을 바꾸라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노동이 사라진 사회에서 소득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득이 없으면 소비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소비가 무너지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무엇으로 돌아가는가.


그래서 등장한 것이 '로봇세'와 '기본소득'이다.
로봇세는 기업이 로봇에게 부여된 일자리에 대해
세금을 내도록 하는 개념이다.
그 재원을 모아 시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AI와 로봇이 가져간 부의 몫을 인간에게 다시 분배하는 장치.


그러나 문제는, 말로는 그럴듯해도 아직 시행한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합의, 재원 마련, 기업의 동의,
사회적 설득 등 모든 게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술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 소설은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현실의 시나리오이다.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그리고 준비할 수 있는가.
이제 그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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