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미상의 『분배 없는 도시』 중에서
때는 2042년, 북미 중서부의 한 도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일할 수 없었다.
한때는 누구나 꿈을 꿨다.
밤낮없이 일하고, 돈을 모으로,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고,
아이에게는 더 좋은 교육을 주고, 언젠가는 작은 사업 하나쯤 꾸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꿈의 사다리는 사라졌다.
돈은 더 이상 일한 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부는 가진 자들의 금고 속에서만 불어났다.
맥스는 20년 경력의 자동차 용접공이었다.
손에는 화상 흉터, 귀에는 기계음의 메아리, 허리에는 녹슨 철판에서 남은 통증.
그러나 어느 날 회사는 통보했다.
"맥스, 너의 노하우는 훌륭하지만, 이제 이 라인은 아론 7 시리즈가 담당할 거야."
맥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
퇴근 없는 삶은 그저 대기실 같았다.
그는 정부가 운영하는 배급소 앞에 줄을 섰다.
그 줄은 점점 길어졌고, 사람들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아이들은 장난감 대신 빈 깡통을 차며 놀았고,
어른들은 낮에는 줄을 서고, 밤에는 불 꺼진 창가에 앉아 술병을 비웠다.
사람들은 말했다.
"여기선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
맥스는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억했다.
예전에는 적어도 '시도'라도 할 수 있었음을.
맥스의 조카 루카스는 열아홉 살,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다.
어릴 적, 맥스와 낡은 로봇 키트를 조립하던 소년은
이제 낡은 스마트폰으로 구직 앱만 넘기며 하루를 보냈다.
"너, 대학 안 가니?"
맥스가 물었던 적이 있다.
루카스는 웃었다.
"삼촌, 요즘 대학은 돈 있어야 다녀요."
장학금 신청은 거절됐다.
AI 선발 시스템은 루카스의 학교, 성적, 추천서까지 계산해
'지원 거부'라는 딱 한 줄의 결과를 냈다.
루카스는 분노할 힘도 없었다.
그저 알고 있었다.
부모의 수입, 집이 있는 구역, 학원 경험, 사교육 이력.
이미 오래전에 승부는 끝났다는 걸.
루카스는 매일 아침 도심의 공유 오피스로 나갔다.
거기엔 비슷한 청년들이 모였다.
앱 디자인, 로봇 유지보수, 데이터 입력.
모두 한때 사람 구실이라 불렸던 일들의 그림자만 남은 자리.
그들은 앱을 만들고, 판매를 시도하고, 다시 실패했다.
대기업의 플랫폼 안에서
독립은 환상일 뿐이었다.
밤이면 루카스는 허리춤에서 식권을 꺼냈다.
시에서 제공하는 청년 급식소.
그 안에서는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가끔 루카스는 삼촌 맥스를 떠올렸다.
어릴 적, 기계손으로 낡은 로봇 키트를 만지던 모습.
그 손은 이제 일자리를 잃었고,
루카스의 손은 아직 기회조차 붙잡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맥스는 창밖을 내다보다
골목 끝에 모인 아이들을 봤다.
그들은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속삭였다.
"북쪽 블록, 빈 창고. 그쪽은 경비가 약해."
"남쪽은 위험해. 지난주에도 시체가 나왔어."
맥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아이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는
학교에서 '미래의 꿈'을 쓰던 아이들이었음을 떠올리며.
그 무렵, 루카스도 도시를 걷고 있었다.
공유 오피스에서의 실패, 거절당한 장학금,
그리고 허리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마지막 식권 한 장.
도시 한복판, 불 꺼진 빌딩 벽에는
누군가가 스프레이로 쓴 문구가 있었다.
'분배 없는 도시, 사다리 없는 사람들'
맥스는 창가에서 그 문구를 내려다봤고,
루카스는 길가에서 그 문구를 올려다봤다.
맥스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루카스는 손끝으로 그 문장을 더듬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생각을 했다.
"여긴 이제,
노력도, 희망도, 통하지 않는 곳이야."
인간형 로봇은 이제 인간을 돕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는 인간을 대체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이건 단순히 “몇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깊은 뼈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사회는 ‘노동’을 전제로 작동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일하고, 소득을 얻고,
그 소득 일부는 세금으로 걷히고,
그 세금으로 복지·교육·의료·치안이 돌아가는 순환.
이건 단순한 경제 구조가 아니다.
사회가 묶여 있는 약속이자, 계약이었다.
그런데 공장, 사무실, 병원, 심지어 가정까지
인간형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게 된다면?
소득은 줄고, 세수는 사라진다.
사회보장제도는 유지할 기반을 잃는다.
국가는 버텨보려 애쓸 것이다.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올리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이 사라진 사회에서
세금을 낼 주체는 누구인가?
물론, 기본소득, 로봇세, 디지털세 같은
새로운 제도적 해법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제도가 설계되고, 실행되고,
안정되기까지는 피할 수 없는 공백기가 생긴다.
그 공백은 소득을 잃은 수백만 명을 제도 밖으로 밀어낸다.
그들은 법적 권리도, 생계 안전망도 없이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해 왔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굶주렸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은 약속된 보너스를 요구하며 워싱턴 D.C.로 몰려갔다.
‘보너스 아미(Bonus Army)’.
그 끝은 경찰·군대와의 충돌,
부상자, 사망자, 사회적 충격이었다.
같은 시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 붕괴,
폭등하는 실업률,
삶의 기반을 잃은 중산층과 노동자.
그 불안과 분노는 극우 정당, 나치당의 부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 터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에서
청년 실업률 50%를 기록했다.
길거리는 시위대, 파업, 점거로 뒤덮였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 운동이
정치 불신과 사회 분열의 상징이 되었다.
이건 단순한 경제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위기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질 때,
사람들은 분노하고, 체념하고,
극단주의와 혐오, 폭력에 빠진다.
그런데 로봇에 의한 일자리 상실은
단순한 경기침체나 금융위기보다 더 깊은 충격이다.
그건 ‘노동’이라는 개념의 붕괴,
그리고 ‘분배’라는 사회적 약속의 붕괴다.
부가 더 이상 노동을 통해 순환하지 못할 때,
사회적 신뢰는 무너진다.
법에 대한 신뢰,
제도에 대한 신뢰,
서로에 대한 신뢰.
이 모든 것이 무너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작은 공동체에 매달린다.
그 안에서 극단주의, 혐오, 폭력이 일상의 언어가 된다.
중남미의 빈민가에서,
중동의 분쟁지대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목격해 왔다.
국가라는 이름만 남은 사회가
어떻게 천천히, 그리고 처참히 무너지는지를.
법보다 소속이 더 강력해지고,
공공질서는 힘을 잃고 사라지며,
총 대신 식량과 생필품이
가장 강력한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상상이나 공상이 아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무겁고 분명한 경고다.
기술은 멈출 수 없다.
문제는 그 기술이 불러올 변화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의 첫걸음은 상상이다.
과연 기술이 불러올 사회의 붕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를
미리 고민하고 다 같이 토론하는 것에서부터
그 길은 시작된다.
질문은 아주 분명하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먹고살며,
어떤 의미로 존재할 수 있을까?
누가 부를 소유하게 되고,
분배의 원칙은 어디에서 새로 설계될까?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 채
무작정 속도만 높여 나간다면,
우리 앞에 남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인간 없는 경제.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하게 될
붕괴되고 파편화된 사회.
다음 챕터부터는 과거로 시선을 돌려보려 한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
그 시기 사람들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그 변화는 어떻게 사회를 뒤흔들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과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오늘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AI와 인간형 로봇, 자동화, 초연결 사회.
이것이 우리의 일, 삶, 관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차근히 짚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학자와 사상가들이 이 변화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그들의 통찰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질문들, 준비해야 할 답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여정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거대한 변화 앞에서, 함께 생각하고 준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