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세상은 보이지 않는 길로 연결되었다.
컴퓨터가 계산을 하고,
전화선이 신호를 주고받고,
위성은 지구를 감쌌다.
사람들은 기계를 만들던 손을 멈추고,
화면 앞에 앉아 데이터를 다루기 시작했다.
타자기는 사라지고, 모니터가 책상 위를 차지했다.
서류철은 디지털 파일로 바뀌었고,
전보는 이메일로 대체됐다.
제러미 리프킨은 이 시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가 결합해 산업과 사회 전반을 재편한 혁명이다.”
공장 안에서는 자동화 기계가 일했다.
로봇 팔은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사람은 그 기계를 관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사무실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단순 업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맡았다.
직원들은 고객을 응대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끊임없이 들어오는 메일에 답장을 썼다.
하지만 일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났다.
머리로만 하는 노동은
야근도, 주말도, 퇴근 후에도 따라왔다.
노트북은 가방 속으로 들어갔고,
스마트폰은 손안에 모든 업무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일을 생각했다.
몸은 출근을 마쳤지만,
마음은 퇴근하지 못했다.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예전에는 손에 굳은살이 박였다.
이제는 어깨가 굳어가고, 눈이 침침해졌다.
예전에는 육체가 부서졌지만,
이제는 정신이 소진되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전환 세대'가 있었다.
기계에서 컴퓨터로 넘어가는 시대,
두 세계 사이에서 버텨야 했던 이들.
타자기를 두드리던 손,
전화 교환대를 돌리던 손,
공장 라인에서 도면을 보며 일하던 손.
그들은 어느 날,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손은 익숙하지 않았고,
눈은 모니터 앞에서 아팠고,
머리는 빠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천천히 일터에서 밀려났다.
젊은 관리자들은 "업무 재편"이라 말했고,
그들에게는 "퇴장"이라 들렸다.
퇴직 후에도 그들은 메일 대신 편지를 쓰고,
화면 대신 종이로 기록했다.
세상은 네트워크로 엮였지만,
그들에게는 점점 더 단절된 세계였다.
사회는 더 나뉘었다.
코드를 짜는 사람, 관리하는 사람,
그리고 그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
IT 기술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렸다.
국가는 정책을 내놓았다.
정보 보호법, 저작권법, 원격근무 지침.
그러나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항상 한 발 늦었다.
이제 질문은 달라졌다.
몸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노동하는가?
머리로만 하는 노동은 덜 고된가?
그리고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세상을 연결했지만,
그 연결이 만든 고립을 풀 방법은,
아직 누구도 찾지 못했다.
출처 미상의 『야근이 주는 것』 중에서
막차가 다가왔다.
라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꾹꾹 누르며 플랫폼에 서 있었다.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보였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스마트폰 알림 창이 반짝였다.
'팀장님: 오늘 자료 정리한 거 내일 아침까지만 부탁해.'
라라는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불 꺼진 상가들이 스쳐 갔다.
어린 시절 엄마는 공장에서 늦게까지 재봉틀을 돌렸다.
엄마는 퇴근하면 손등에 연고를 바르고,
숨 고르듯 벽에 등을 기대곤 했다.
라라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토록 지쳐 있는지.
그런데 지금,
라라는 퇴근했어도 퇴근한 게 아니었다.
가방 안에는 회사 노트북이 있었고,
손 안에는 메신저 알림이 있었으며,
머릿속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업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지?'
그녀는 그 질문을 혼자 삼키며 잠깐 눈을 감았다.
노동은 달라졌다.
이제는 손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이 닳아 없어지는 시대였다.
지하철이 종착역에 다다랐다.
라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마지막 알림음을 확인하려 손을 뻗는 자신을 그저 멀거니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