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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국가가 침묵할 때

by 홍종원

서울 기상청 화산관측센터의 공기는 이미 ‘관측’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천장의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깜박였고, 알람은 심장 부정맥처럼 끊기며 울렸다. 모니터에는 더 이상 경로선이 표시되지 않았다. 화면 전체가 붉은 경고로 잠식되어 있었고, ‘측정 불가’라는 문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깜박였다. 그 순간은 단순한 관측 실패가 아니라, 국가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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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관 김지훈은 손끝을 떨며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위성 영상 속 백두산 북부는 더 이상 지형이 아니었다. 숲은 회색의 파도처럼 흘러내렸고, 도로는 지워진 선처럼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는 숨을 삼키며 말했다.
“저건... 그냥 흘러내리는 게 아닙니다. 땅 자체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순간 평양 북부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전깃줄이 끊어지며 불꽃이 터졌고, 도시는 고요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지진이라 생각했지만, 곧 하늘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붉게 빛나던 구름은 곧 색을 잃고, 하늘 전체가 불덩어리처럼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입을 막았다. 숨을 들이마실 공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이제는 국가조차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때, 남한 상공에서도 이상 반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경북 북부와 강원도의 대기 관측소에서 정체불명의 낙하물 농도가 급격히 상승했고, 하늘색은 회색으로 탁해졌다. 기상청 센서가 ‘태양광 혼탁’ 경보를 발령하자,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도 “하늘이 내려앉고 있다”는 불안이 확산되었다. 휴대전화 통신은 간헐적으로 끊겼고, 일부 지역에서는 위성항법장치(GPS)가 수신 오류를 일으켰다. 백두산의 폭발이 단순한 북쪽의 사태가 아니라, 남한의 우주적 환경을 ‘침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북한 국영 라디오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체제는 안정적이며, 백두산은 통제 하에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숨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잡음이 섞이더니, 몇 초 뒤 방송은 끊겼다. 라디오에서는 짧은 정적만 흘렀다. 그 순간 사람들은 이해했다. 이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걸.


대한민국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양강도와 함경북도는 위성 영상에서 완전히 지워졌고, 지도는 흐릿한 회색으로 덮였다. 참모 중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북쪽은 이제 국가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의견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국가란 영토, 체계, 지도자가 모두 존재할 때 유지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더 큰 공포는 그다음에 다가왔다. 남한 북부에 설치된 지진계가 연달아 붉은 점멸을 시작했고, “백두산 기원의 충격파가 남한 지각 구조로 전이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강원도 고성에서는 가벼운 진동과 함께 상수도관이 파열되었고, 제주 남단 어선들은 대기 중 정전기로 인해 무선 통신이 마비되었다. 폭발의 그림자가 국경을 넘은 것이 아니라, ‘국경을 지워버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국제 뉴스는 자막을 바꾸며 사태를 중계했다.
<북한 북부 지역 전면 붕괴>
<행정 체계 작동 정지>
<국제사회, 무정부 지대 지정 논의>
하지만 어느 방송도 ‘재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응 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문명 구조 자체가 제거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해설위원들은 입을 떼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국가는 말을 멈췄고, 세계는 그 침묵을 따라 조용해지고 있었다.


서울 기상청의 한 직원이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은… 누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말은 두려움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의 확인이었다. 더 이상 지시를 기다릴 수 없고, 국가라는 기표에 기대어 마음을 붙들어 둘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제는 제도나 명령이 아니라, 각자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백두산의 충격파가 두 번째로 육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아직 도시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국가의 시간은 이미 멈춰 있었다.
세상은 알게 되었다.
“국가가 침묵할 때, 인간은 처음으로 자연 앞에 완전히 홀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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