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는 마치 지하 깊은 곳에 갇힌 잠수함처럼, 외부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압력만이 차오르고 있었다. 장군들도, 장관들도 말수가 줄었고, 화면 위에 표시된 붉은 경계선은 이미 휴전선을 넘어 남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 경계선은 단지 화산재의 확산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너머로 국가의 통제력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었다.
서지훈 국가안보실장이 입을 열었다.
“북한 북부 행정체계는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주민들은 조직적 지휘 없이 이동을 시작했고, 위성 영상에 따르면 서쪽과 동쪽을 가리지 않고 남하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 휴전선 전역이 통제되지 않는 대규모 난민 이동에 직면하게 됩니다.”
합참의장이 화면을 넘겼다. 차트에는 붉은 점들이 실시간으로 남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군은 북한 주민 보호 및 수용 지원을 위한 북쪽 이동 준비 태세로 전환했고, 임시 수용소 준비도 시작됐습니다. 문제는…”
합참의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작권입니다. 현 체계에 따르면, 한국군은 단독으로 DMZ 북쪽으로 진입하거나 방어선을 넘어 ‘수용 단계’를 확장할 권한이 없습니다. 미군 승인 없이는 단 한 명의 병력도 북한 영토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회의실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군인들이 고개를 숙였고, 민간 장관들도 시선을 모니터 쪽으로 돌렸다. 누구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말이 ‘현실’이라는 데 있었다.
국방부 장관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지금은 전쟁이 아닙니다. 군사 개입의 명분을 말할 때가 아니라, 사람부터 살려야 할 때입니다. 저들은 적이 아니라, 화산의 불길에서 도망친 난민입니다. 군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죽습니다. 우리는 땅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군대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미국 측 연락관이 서늘한 표정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워싱턴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리 인도주의적 사안이라도, 군의 이동은 전시작전권에 따라 미군 통제 아래 있습니다. 한국군은 서울 방위를 우선으로 해야 하며, 북한 지역으로의 진입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군사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대기’가 최종 명령입니다.”
그 말은 외교적 표현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한국은 아직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 회의실 안의 누구도 미국 연락관에게 직접적인 반박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은 감정이 아니라 조약과 체제에 기초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윤현우 대통령은 눈을 감았다 뜨며,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경계선 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느 국적이든, 그 땅은 한반도이며, 우리는 그 운명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전작권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역사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미국 연락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곧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승인이 없다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낮고 울리는 진동이 들려왔다. 백두산이 두 번째 폭발을 준비하는 신호였다. 대기권이 진동했고, 지도 위의 붉은 영역이 더 짙어졌다.
참모 한 명이 숨을 삼키며 말했다.
“대통령님... 이대로 무너지면, 북쪽은 사실상 국가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그 공백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메울지는 지금 결정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눈앞의 지도에서 국경선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승인을 기다리는 나라’와 ‘스스로 결정하는 나라’를 가르는 선으로 보였다.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승인과 선택 사이에 서 있다. 그러나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말은 곧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회의장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통일의 시작이 아니라, 통일을 가로막는 첫 번째 벽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