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한 시즌’을 정의하는 방식
메이저리그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왜 이렇게 경기가 많아요?”
한국 프로야구는 144경기, 일본 프로야구는 143경기.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무려 정규시즌 162경기를 치른다.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리고, 하루 이틀 쉬고 다시 또 경기가 이어진다.
이 숫자는 단순한 ‘많음’이 아니다.
162경기는 메이저리그가 야구를 바라보는 철학 그 자체다.
1. 162경기는 ‘실력’을 걸러내는 시간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Baseball is a game of failure.”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다.
타자가 10번 중 3번만 안타를 쳐도 스타가 되고,
투수는 최고의 공을 던져도 운이 나쁘면 실점한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묻는다.
“그 실력이 진짜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162경기는 우연을 지우고, 실력을 드러낸다.
10경기 잘하는 선수는 많다.
50경기 반짝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162경기를 버티며 성적을 유지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초반 반짝한 타율은 결국 평균으로 돌아온다
운 좋게 막던 투수는 언젠가 얻어맞는다
진짜 실력은 긴 시즌 끝에 숫자로 남는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의 기록은 무겁다.
홈런 40개, 3할 타율, 200이닝 투구는
‘우연’이 아니라 ‘증명’이다.
2. 162경기는 ‘팀’의 깊이를 시험한다
메이저리그는 스타 한 명으로 우승할 수 있는 리그가 아니다.
162경기를 치르다 보면 반드시 이런 일이 생긴다.
주전 선수가 다친다
불펜이 무너지는 시기가 온다
원정 10연전에서 팀이 흔들린다
이때 드러나는 것이 바로 팀의 뎁스(depth),
즉 선수층의 두께다.
5 선발이 얼마나 버텨주는가
벤치 멤버가 결정적인 순간 제 역할을 하는가
마이너리그에서 누가 올라와 공백을 메우는가
162경기는 “베스트 9”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평가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프런트는
단기 성적보다 시스템을 중시한다.
팜 시스템, 데이터 분석, 선수 관리가
162경기 체제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3. 162경기는 ‘흐름의 스포츠’ 임을 보여준다
메이저리그 팬들은 시즌을 이렇게 나눠서 본다.
4월: 몸 풀기, 데이터가 쌓이는 시기
5~6월: 진짜 실력 윤곽이 드러난다
7월: 트레이드 데드라인, 승부수의 시간
8월: 체력과 멘털의 싸움
9월: 포스트시즌을 향한 생존 경쟁
162경기 시즌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에 가깝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는
‘오늘 한 경기’보다
‘이번 달 흐름’, ‘이 시리즈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3연전 스윕, 10연패, 원정 6연승 같은 말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4. 162경기는 팬을 ‘동행자’로 만든다
162경기를 따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야구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출근길에 어제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점심시간에 타선 변화를 확인하고
새벽에 끝난 경기 결과를 다시 본다
팬은 시즌 내내 팀과 함께 웃고, 함께 지친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정규시즌은 하나의 생활 리듬이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목표이지만,
162경기 자체가 이미 완성된 이야기다.
이 긴 여정을 함께 했기에
가을야구의 한 경기 한 경기가 더 절실해진다.
5. 왜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162경기를 고집할까
경기가 너무 많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쉽게 줄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야구는 확률의 스포츠이고
확률은 충분한 표본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162경기는
선수, 팀, 시스템, 그리고 운까지
모두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정리하며
162경기는 길다.
하지만 그 길이 덕분에 메이저리그는 깊다.
이 숫자를 이해하는 순간,
메이저리그는 더 이상
“경기가 많은 리그”가 아니라
“야구를 가장 야구답게 증명하는 리그”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메이저리그는
정말로 100배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