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음식을 먹고 자서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겨울인데도 믿기지 않게 40도가 넘는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우리는 무슨 용기였는지 “20분 정도야~”라며 U-bike (대만 공유 자전거)를 빌려 보얼 예술 특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오르막길이 많아 힘들었는데, 달리던 중 한 아이가 갑자기 “韓國人!? (한국인!?)” 이라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이 아이의 부모님도 나타나서, “한국인이냐”라고 물으며 길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아마 그쪽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드물어서 더 신기했나 보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구글맵에서는 2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지만, 더위와 길 헤맴 덕분에 30-40분은 족히 걸린 듯했다.
보얼 예술 특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이미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결국 카페로 직행해 패션후르츠 주스로 더위를 식혔다. 이곳에서는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그런가 체력은 회복되었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이 있었다. 아마 너무 더웠다가 갑자기 시원해져서 그런 모양이다. 카페에서 나와 PX마트에 들러 더위에 좋은 동과차를 구매해 마시니 조금 나아졌다.
보얼 예술 특구 어딘가에서는 바나나 조형물과 비눗방울 공연 등 작은 이벤트가 있어 구경하고 사진도 실컷 남겼다. 하지만 체력이 방전된 우리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호텔에 무료 스낵바가 있어 음료와 과자를 맛보던 중, 그 유명한 *乖乖(꽈이꽈이) 과자를 발견했다. 이 과자가 왜 '부적'처럼 쓰이는지 다시금 떠올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 대만의 미신 과자, 乖乖
乖乖
1) 착하다
2) 말을 잘 듣는다
대만에서는 이 과자가 단순한 간식을 넘어
부적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왜 미신처럼 쓰이게 되었을까?
한 공대 연구실에서 컴퓨터가 자꾸 고장 나던 시절, 누군가 컴퓨터 위에 乖乖를 올려두었더니,
그 뒤로 기계가 멀쩡히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이후 대만 사람들은
기계가 ‘乖乖(착하게) 잘 돌아가라’는 의미로
서버실, 연구실, 은행, 호텔 등 다양한 곳에 이 과자를 올려두기 시작했다.
乖乖는 맛에 따라 봉지 색깔이 다르다.
초록색은 코코넛맛, 빨간색은 초콜릿맛, 노란색은 오향맛 그리고 최근엔 분홍색 마라맛까지 출시되었다.
초록색 (정상 운행)
-> 기계가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길 바란다는 뜻이다.
빨간색 (에러 또는 정지)
-> 고장이나 오류를 의미하기 때문에 장비 위에 올려두지 않는다.
노란색 (경고 또는 불안정)
-> 불안정한 느낌이라 피한다.
그래서 연구실이나 서버실에서 보이는 乖乖는
전부 초록색이다!
호텔 스낵바에서 과자를 찍고, PX마트에 들른 뒤 호텔로 돌아오는 길. 30cm 정도 높이의 보도블록에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끗했다.
이때 오징어게임 2가 나왔던 시기라, 관련 상품을 보며 즐겁게 정보를 공유하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괜히 '남의 부적 건드려서 벌 받은 거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중심을 간신히 잡아 넘어지진 않았다.
호텔로 돌아와 얼음찜질과 족욕, 파스, 호랑이 연고 등 총동원하며 발목을 케어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상비약 '타이레놀' 도 바로 먹었다. 오빠는 내가 삔 걸 보고 걱정했고, 호텔 직원도 번역기를 써가며 나의 발목 상태를 확인하고, 심지어 얼음팩까지 계속 리필해 주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오히려, 여행 온 건데 나 때문에 호텔에 갇혀 있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오빠에게 계속 미안해했다. 그러자 오빠는 “나도 휴식 필요했어. 오늘은 그냥 쉬다가 배달시켜 먹자”라며 미안해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정말 든든한 내 오빠!
약도 먹었겠다 나가지도 못하는 거 그냥 잠이나 자자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빠는 커튼을 치려 했지만, 나는 햇살을 맞으며 자고 싶다고 했다. 잠들자마자 하늘이 흐려지고 세차게 비가 쏟아졌다. 겨울의 가오슝에 이런 비는 드물고, 일기예보에도 없던 상황. 마치 하늘이 내가 다친 걸 속상해하는 듯했다.
그날 오빠가 사 온 ‘정광쿨파스(正光涼灸貼)’는 붙이는 타입인데, 개인적으로 한국 파스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다. 붙이는 순간 시원하게 느껴지고, 한 팩에 20장 들어있어 가성비도 뛰어났다. 게다가 한국 파스는 항상 붙이고 나면 알레르기가 생겼는데, 이 제품은 그런 것도 없어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 파스 덕분인지 다음날에는 10,000보 이상 걸어도 괜찮을 정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