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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남부, 타이난과 가오슝 이야기 ➂

by 대미녀

Day.4 : 발목은 OK, 훠궈는 필수!

아침에 일어났더니 다행히도 돌아다녀도 문제없을 정도로 발목이 괜찮아졌다. 약간 아프긴 했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가오슝 공항 근처로 호텔을 옮겨야 하는 날이라, 짐을 챙겨 새로운 호텔로 향했다. 호텔 체크인 후, 근처 맛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便當(도시락)을 먹고, 근처에 아웃렛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한국에서도 아웃렛 가는 걸 좋아하기에 기대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만 아웃렛은 한국보다 아쉬운 편이었다. 제품도 다양하지 않고, 분위기도 조금 밋밋하고, 가격도 한국이 더 저렴한 느낌.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많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목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한 한을 풀자는 의미로 먹기를 택했다. 이번 목표는 인생 첫 대만 훠궈! 호텔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훠궈집을 구글맵에서 찾아냈다. 외국인 리뷰는 없었고, 현지인 리뷰만 가득한 곳이어서 기대감이 상승했다. 정녕 사람의 뼈가 강철인 건지, 다친 바로 다음날 만보를 넘게 걸었다. 이럴 땐 확실히 내 통뼈가 고맙다.

훠궈집에 도착해 메뉴판을 살펴봤다. 주문은 쉽지 않았지만 직원분이 친절히 도와주셔서 맛있는 메뉴만 잘 골라낼 수 있었다. 훠궈 국물 맛은 잊지 못할 정도로 깊고 진했다. 우리는 백탕과 마라 국물을 선택해서 반반으로 즐겼는데, 이런 반반 훠궈를 *원앙훠궈라고 부른다. 소스는 기본적으로 간장, 마늘, 대파만 넣어도 충분히 맛있다. 향신료를 좋아하면 고수까지 넣길!

이곳에는 백향과 슬러시가 있었는데, 진짜 신의 한 수였다. 짭짤한 국물과 훠궈 재료들에 조금 질릴 즈음에 한 모금 마시면 달고 시원하고 상큼해서 입 안을 리프레시해 주니, 다시 훠궈를 먹기 좋은 상태로 돌아온다.

원앙훠궈 (鴛鴦火鍋 yuān yāng huǒ guō)

보통 백탕 + 마라탕 이렇게 반반으로 된 훠궈를 말한다.
다른 국물 반반도 가능하지만, 원앙훠궈라 하면 대부분 백탕과 마라탕 조합을 떠올린다.

훠궈 소스 추천!
호불호 거의 없는 기본 조합 :
간장(醬油, jiàng yóu) + 마늘(蒜頭, suàn tóu) + 대파(蔥, cōng)

향신료를 좋아한다면 고수까지 추가해 보자!

tip : 국물이 자체적으로 짭짤하기 때문에 소스는 간단히 먹는 게 좋다.
보통 소스바가 따로 있으니, 입맛에 따라 자유롭게 만들어 먹어보자.

음식도 너무 만족스러웠는데, 왠지 모르게 할인까지 받았다. 배를 두둑하게 채운 후, 다시 호텔로 걸어오는 길에 쥐떼를 마주쳤다. 진짜 내 발 바로 아래로 수십 마리가 달려가서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발이 아파 도망도 못 가고, 그 자리에서 기겁만 했다. 그래도 바선생보단 쥐가 나을지도...

이때 순간 어디선가 쓰레기차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매우 반가워 미소를 뗬다.

냄새나는 쓰레기차가 뭐가 반갑냐고? 쓰레기차가 반가운 게 아니고, 쓰레기 차에서 나오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다. 대만의 쓰레기차는 노래가 나오는데, 몇몇 외국인들이 이 소리를 듣고 아이스크림 차인 줄 알고 신나서 나갔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이 쓰레기차 노래를 굉장히 좋아한다.

타이베이 즉, 북부 쪽은 보통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오는데, 가오슝과 타이난 즉, 남부에는 소녀의 기도가 나온다. 대만의 밴드 ‘五月天(오월천)’의 노래 중에서도 垃圾車(쓰레기차)라는 곡이 있는데, 이 노래는 대만 사투리(台語)로 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 시작할 때도 남부에서 나오는 쓰레기차 멜로디가 등장한다. 이런 차이를 알고 있다가, 일상 속에 마주치면 아주 재미있다.


https://youtu.be/nIe3FLKNwTA

대만 쓰레기차 :
대만 쓰레기차는 보통 노란색이고, 남부와 북부의 멜로디가 다르다.

북부(타이베이) ->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남부(가오슝, 타이난) -> 바라노프스카 ‘소녀의 기도’

지정된 시간에 쓰레기차가 동네를 도는데,
이때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와서 직접 버리면 된다.
물론, 집에 쓰레기 버리는 공간이 따로 있다면,
이 과정은 생략 가능하다.

아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는 쓰레기를 ‘垃圾(lājī / 라지)’라고 부르는데, 대만에서는 ‘垃圾(lèsè / 르어써)’라고 부른다.

Day 5. 눈 깜짝할 새 사라진 4박 5일의 기억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새벽 비행기라 오전 4시쯤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하러 나섰다.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직원이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내가 가려던 바닥 쪽을 급히 막더니, “그쪽은 밟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제스처를 취했다. 순간 무슨 큰일이 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새벽까지 술 마신 손님이 그곳에 실수를 해버린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호텔 직원이 유니폼 대신 흰 나시 차림으로, 커다란 염주 목걸이를 들고 눈을 감은채 뭔가를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웃으면 실례일 것 같았지만, 이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다. 마치 마귀 같은 걸 돌려보내는 의식을 치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직원은 분명 이 사건이 끔찍했을 텐데, 나는 덕분에 또 하나의 여행 중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을 보게 된 셈이라 기억에 남는다.

비행기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니, 뜨는 해가 유난히 멋있었다. ‘아, 다시 돌아가서 덥지만 뜨거운 대만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고, 창밖을 한참 바라보며 뜨는 해를 감상했다. 나는 이렇게 또다시 대만을 뒤로한 채 한국으로 향했다.


발목은 괜찮았지만 혹시 몰라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결과는 단순 발목 염좌. 심하지도 않다고 해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정광 파스 효과 그리고 나의 통뼈 덕분이려나. 원래 가려던 소류구 여행은 물 건너갔지만, 이걸 기회로 또 오면 되니까 괜찮다.

4박 5일 길면서도 너무 짧게 느껴졌다.

세 번째 대만 여행이라 질릴 법도 한데, 오히려 매 순간이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 매일같이 그리워지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걸 보면서, 대만은 내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 한편에 늘 남는 ‘두 번째 집'인 것 같다. 떠나오는 발걸음은 늘 아쉽지만, 마음 한편에는 벌써 다음 여행을 향한 설렘이 스며든다. 아니면 대만이 일부러 날 잡아두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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