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선의 시점
9. 수령자, 혜선 (혜선의 시점)
그녀에게서는 깊고 진한 바이올렛 향이 났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녀의 향기는, 파리의 깊은 밤처럼 짙고 그윽했다. 내가 다시 눈을 뜨면, 나는 거리 위에 있다. 노천카페의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운다. 지금, 거리의 향기가 난다.
나는 그녀의 심장을 받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
또 한 번의 기회가 생겼어.
살아갈 수 있는 — 이번 삶은 멋지게 살아보는 거야.
병원도 약도 없이, 누구의 보살핌이나 간호도 없이, 자유롭게.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어.」
혜선은 눈을 뜬다. 아주 오랜 잠을 잔 것 같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을 환히 비춘다. 그녀는 시계를 보고 곧바로 일어난다.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그녀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고, 화장대에 앉는다. 윤기 나는 피부, 깊고 커다란 눈동자, 오똑한 콧날. 거울 속에는 혜선의 얼굴이 비친다. 그녀는 스스로를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 짓는다.
흩어진 잔머리를 손에 쥐고 돌려 올린다. 가느다랗고 하얀 목선이 햇살에 드러난다.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고,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뷰러로 집는다. 화장대 위 립스틱 중 하나를 집어 든다. 오늘은 핑크색을 발라야겠다고 생각한다. 손톱과도 비슷한 색이다. 마지막으로, 투명한 액체가 담긴 고급스러운 유리 향수를 뿌린다.
그녀는 핸드폰을 챙기고 곧장 밖으로 나선다. 그녀에게서 가벼운 하얀 향기가 난다. 그녀는 정말로 러블리한 숙녀다.
“좋은 하루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남자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녀 앞집에 사는 이웃 남자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동안에도 둘은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하루 잘 보내요.”라는 인사를 남기며 제 갈 길로 향한다.
로비에서 또 두 명의 남자와 마주친다. 그들은 그녀에게 친근한 표정으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한다. 한 남자가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녀는 밝게 미소 짓는다. 그들은 함께 로비를 나선다.
근처의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 야외카페에 도착한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다. 호수가 햇살에 반짝인다.
카페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녀는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는다. 일행들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건강을 각자의 방식으로 축하한다. 그들은 약간 이른 점심을 함께하기로 한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아침은 먹지 않았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다시 그녀의 건강을 축하하고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은 장난을 치며,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화기애애한 오후를 보낸다.
그녀의 기분은 한없이 가볍다.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때, 핸드폰이 짧게 진동한다. 택배 도착 문자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 속에 깊이 잠겨 있다.
오후가 저물 무렵, 커피와 케이크, 그리고 가벼운 샴페인 파티가 끝난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짓는다. 자유로움과 행복감이 오래도록 이어질 것만 같다. 발걸음은 한층 더 가볍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거의 지나칠 뻔한다. 발끝이 상자에 툭 부딪히고서야 비로소 문 앞에 그것이 놓여 있음을 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he-operation
[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