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우리

꿈, 악몽 그리고 시작-1

by K기노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욕실 안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금방 그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기의 울음소리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그 울음소리는 내 왼쪽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아기 곁에 있을 엄마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샤워기의 물소리를 멈추고 욕실문에 귀를 바짝 대어보았다.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세면대 선반 위에 벗어놓은 손목시계가 정확히 저녁 8시 27분을 가리켰다.

3분 남았어.

조금 전 샤워를 마쳤지만 다시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손톱 옆의 여린 살점들은 나도 모르게 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질겅거리며 뜯겨나가기를 반복했다.

조금만, 조금만... 3초.. 2초.. 1초.

내 속은 점점 더 타들어가는데 그치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엄마!"

욕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과 함께 노출되어 있는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온몸에 삐죽삐죽 가시 같은 소름이 돋고 부르르 떨려왔다. 나는 엄마가 있을 거실 소파로 달려갔다. 원래라면 그곳에서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속극을 보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일랜드 식탁 옆에 쓰러져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가 이불 위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얼굴이 터져라 울고 있었다.

"엄마! 엄마!"

나는 울부짖으며 엄마를 거세게 흔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움직이지도 눈을 뜨지도 못했다.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차가 도착하자 나는 급히 입은 젖은 옷 위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긴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그렇다고 말아서 묶지도 못하고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는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오전 6시 8분.

정확히 알람 울리기 2분 전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어제 잠들기 전에 교체한 하얀색 이불 시트와 베개 커버가 축축해져 있었다.

"아, 또 꿈이었어."

나는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요즘은 꿈인지 현실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꿈 때문에 잠을 자기가 겁이 날 정도로 두려워졌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날들이 계속될수록 나는 항상 날이 서 있었다.

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오전 6시 10분을 알리는 폴킴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래전 노래지만 폴킴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따뜻했다. 막 꿈속에서 벗어난 내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현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멈춘 세상과 같았다.

나는 축축해진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욕실 손잡이를 잡고 서자 순간 몸이 휘청거리며 현기증이 났다. 겨우 중심을 잡고는 휴대폰을 세면대 위 선반에 올려놓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잔뜩 날이 선 낯선 여자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도대체 그 갓난아기는 뭐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세면대에 뜨거운 물을 틀었다. 거품이 생크림처럼 쫀쫀하게 만들어진다는 인스타 광고를 보고 구입한 클렌징 폼을 짜서 손바닥에 문질렀다. 광고처럼 정말 그것은 풍성한 거품을 만들며 손바닥에 몽글몽글하게 올라왔고 볼, 이마, 턱, 콧등 순으로 발라가며 둥글게 원을 그리고 마사지를 했다. 거품은 찰지게도 탱글탱글했지만 손 끝에 느껴지는 감촉 속 피부는 이제 갓 서른이 된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칠고 탄력을 잃어가는 듯했다.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온수에 맞춰 틀었는데도 첫 물은 두통을 느낄 만큼 차가운 물이 뿜어져 나왔다. 악, 소리가 나올 만큼 차가웠지만 이내 조금 뜨거울 정도의 물이 내 머리카락 아래로 흘러내렸다. 요즘 들어 풍성했던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많이 빠졌다. 그동안 내가 샴푸를 구입하는 기준은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이었는데 얼마 전에 클렌징 폼과 함께 구입한 기능성 탈모샴푸의 초록색 통을 보니 괜히 심란해졌다.

나는 샴푸를 손바닥에 세 번 펌핑해서 거품을 낸 뒤 손가락으로 두피 구석구석을 문지르고 씻기 시작했다. 정수리에서부터 긴 머리카락까지 꼼꼼히 정성을 들였다. 은은한 꽃향기 대신 코끝으로 시원하게 치고 올라오는 멘톨향이 잠을 확 달아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샤워볼에 콜라겐이 들어있다는 바디워시로 온몸을 깨끗하게 씻어내며 마무리했다.

아직 선반 위 휴대폰 시간은 6시 50분을 가리켰다.

나는 헤어용 수건을 머리에 감고 큰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변기뚜껑을 내리고 그곳에 걸터앉았다. 머리에 수건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습하고 뜨거운 욕실 안에서 나는 그새 얼굴과 어깨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나는 기어이 오전 7시가 되어서야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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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