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우리

우리의 결혼 -15

by K기노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따뜻한 어느 봄날이길 바랐다. 그 중심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많은 사람의 환호와 박수 속에 내 인생의 다음 챕터가 열리게 되는 극적인 순간에 다다랐다. 하늘은 유난히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우리의 무대는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그 사람은 내 손에 잡힐 듯 끝내 닿지 않았다. 하늘에서 강렬히 쏟아내는 하얀 빛줄기는 시야마저 가려서 어느새 아빠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반쯤 감지 않고서는 고개를 들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하고 따스한 햇빛이었다. 나는 팔을 들어 손등을 눈 위에 대고 빛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펼쳐진 손가락 사이사이로 여전히 그 빛은 나를 향해 돌진하며 고스란히 나에게로 왔다가 사라졌다.




여름으로 향하던 나의 바람은 다시 겨울로 방향을 틀어, 따스한 봄바람 대신 부쩍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불어대기에 이르렀다. 엄마의 바람대로 식장을 잡고 남들 눈에 그럴싸해 보이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지만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내 드레스를 고르고 그 사람의 턱시도도 함께 골랐다. 예정에도 없던 웨딩사진과 내 손에 쥐어질 부케까지 고르며 나는 남들이 다 해보는 결혼 준비의 고단함을 느꼈다. 혹시 내 마음의 혼란스러움을 그 사람에게 들킬 새라, 표면에 드러나는 감정을 숨긴 채 또 남들에게는 아닌 척 연기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든 게 쉬운 듯 편해 보였고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모든 걸 나에게 맞추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는 그 사람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초라할 것 같았던 나의 결혼식은 엄마의 바지런함 덕분에 꽤 근사해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편도, 그렇다고 가까운 가족 하나 없이 엄마는 혼자 손님들을 맞이했고 연신 눈물을 훔치며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 사람의 형편도 다르지 않았지만, 아빠 대신 외삼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그의 꽉 찬 가족애가 연신 부럽기도 했다.

나는 신부대기실에 혼자 앉아있었다. 애써 불편함을 감추고, 대신 곧 결혼식을 올릴 사랑스러운 신부의 미소를 얼굴에 장착해야만 했다. 곧이어 그 사람의 삼촌과 숙모들, 이모할머니라 불리는 사람들까지 나를 보러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한 마디씩 덕담 같은 말을 던지고는, 곧 예식이 시작될 결혼식장 안으로 사라졌다.

"써언!"

반가운 수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려하기만 하던 수찬은 긴 웨이브를 늘어뜨린 채 차분한 갈색톤의 스커트와 스카프를 두르고 진우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평소와는 다르게 절제된 모습의 수찬이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녀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수찬을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왜 그래? 너무 긴장돼서 그런 거야?"

수찬이 놀라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가방 속에 든 손수건을 꺼내 내 화장이 지워질 까 조심스레 내 눈물을 닦아냈다.

"예쁘다. 우리 써언 진짜 예뻐."

수찬의 크고 아름다운 눈동자에도 또르륵 눈물방울이 맺혀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갑작스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눈물은 한 동안 그칠 줄을 몰랐다.


지금 밖에는 계절의 바람이 새 단장을 하느라 분주할지도 모른다. 곧이어 아름다운 신부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내 손을 잡고 걸어 줄 사람이 없어서 나는 홀로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내 작은 손에 끼워진 웨딩 장갑과 하얀 백합으로 만든 부케를 바라보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닿지 않을 줄 알았던 꿈과는 달리 그 사람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나의 작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 사이로 나를 이끌어 묵묵히 걸어갔다.

나는 퐁당퐁당 강물 위를 뛰어다니는 작은 돌들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그 사람과 잡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괜찮아요?"

그 사람은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괜찮아요."

출렁대던 나의 파도는 그제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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