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16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식은 차분히 흘러갔고 엄마의 옆자리가 비어있었지만 그 빈자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하객들은 더 큰 환호와 박수로 우리의 앞날을 축복하는 듯했다. 아름다운 음악 선율이 흐르고, 하얀 꽃잎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나부꼈다. 나와 맞잡은 그 사람의 손은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는 유일하게 금반지 하나씩을 네 번째 손가락에 나눠 가졌다. 그리고 평생 서로를 사랑하며 아끼겠노라 많은 사람 앞에서 선언했다. 다음은 부케를 던질 차례였다. 아름다운 백합 부케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수찬의 손에 얌전히 떨어졌다. 마치 제 자리를 찾아간 듯, 부케를 품에 안은 수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그런 수찬의 얼굴을 바라보자 문득 가슴이 아려왔다.
엄마와 나, 우리의 조촐한 가족사진은 하나도 허전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내가 진짜 가족이 되었다는 증표를 남긴 후 마지막 신랑, 신부의 행진으로 우리의 무대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신혼여행도 못 가고 어떡해? 많이 속상하지?"
"아니야, 갑작스럽게 결혼식을 하는 바람에 창윤 씨 출장 일정을 어쩌지 못했어. 다음에 더 근사한 곳으로 가기로 했으니까 하나도 섭섭하지 않아."
부케를 가슴에 안고 진우와 나란히 선 아름다운 수찬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더 큰 미소로 그들을 대했다.
"오늘 우리 써언 정말 예뻤어. 항상 행복만 해야 해. 창윤 씨 우리 써언 잘 부탁해요."
"네, 걱정 마세요.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사람도 환하게 웃으며, 우리 결혼식에 온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하고 진심이 담겨있었다.
떠들썩했던 결혼식이 끝나자, 언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한 적막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차 안에 우리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막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색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좁은 공간 안을 내내 맴돌았다.
"우리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갈까요?"
"오늘 긴장을 많이 했나 봐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그 사람은 우리의 신혼집으로 차를 몰았다. 삼십 분이면 도착할 곳에 있었지만 거리는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차량에 막혀 한 시간가량 시간이 걸렸다. 괜히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차에서는 브루노 마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은 눈 끝이 시큰하게 아리듯 시렸다.
어느새 그 사람의 차는 신혼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의 신혼집은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마련했고 그 사람은 온전히 모든 결정을 나에게 맞춰주었다.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그럼 편안히 쉬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나는 그 사람을 뒤로 한채 터벅터벅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사람도 나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뒤돌아가는 듯했다. 아파트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곧 둔탁하게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유리창 너머로 그 사람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으로 마련한 우리의 보금자리로 들어오면서도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추고 나는 내 생일을 조합한 여덟 자리 비밀번호를 누른 뒤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거실에는 3인용 인조가죽 소파와 조그만 테이블, 맞은편에는 티브이와 우리의 웨딩사진이 덩그러니 걸려있었다.
"오늘 고생했다. 창윤이는 피곤해하지 않니? 꼭 이럴 때 출장이 잡혀서 신혼여행도 못 가게 한다니?"
"이미 오래전에 잡혀있던 중요한 일정이라 그래요. 그리고 결혼식 날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잖아요. 창윤 씨는 먹을 걸 좀 사러 나갔어요. 그리고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자야겠어요."
엄마에게 대충 둘러대고 빠르게 전화통화를 마쳤다. 신부화장을 클렌징 오일로 깨끗이 지우고 올림머리에 꼼꼼히 박힌 실핀들을 빼내며 뒷 머리 사이에 꽂혀 잘 빠지지 않는 실핀 몇 개를 마저 빼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몇 번의 샴푸에도 머리카락에 뿌린 단단한 헤어스프레이의 흔적들이 잘 제거가 되지 않았다.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괜한 공허함이 몰려왔다.
나는 극심하게 피로감을 느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드라이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마치 눈에 접착제를 발라놓은 것마냥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와 어두움 속으로 나를 가둬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