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 -17
환하게 쏟아지는 조명 아래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뭘 그리 멀뚱히 서서 우물쭈물거리나, 스스로도 답답하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두렵다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항상 혼자였고, 혼자 있는 게 익숙한 나였는데, 왜 지금 이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까. 주위는 너무 밝고 조용했다. 온 세상에 오로지 나만 남은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흰 조명에 눈이 따가웠다. 순간 감겼던 두 눈이 천천히 열리고 내가 잠들었던 장소가 눈 안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화장품과 드라이기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화장대, 작은 스탠드가 놓인 협탁, 그리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 불은 켜 둔 아까 그대로였다. 당연히 꺼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음을 자각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일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개운하지 않았다.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만져보았다. 한참 동안 머리에는 수건이 얹어져 있었고 둘둘 말아 올린 머리카락은 어설프게 말라서 빗질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불 시트에는 꿉꿉한 수분기가 맴돌았고 다른 걸로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뭔가, 내 모습이 너무 볼품없고 초라하게 보인다고 느껴졌다.
"하.. .."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대충 머리끈으로 긴 머리카락을 묶고 냉장고 안에 넣어둔 맥주캔 하나를 꺼내 들었다. 냉장고 안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지만 맥주캔은 손이 시릴 만큼 차가웠다. 나는 거실 베란다로 나갔다. 밝은 해는 사라지고 어느새 하늘은 캄캄한 어둠으로 잠식되어 있었다. 점점 바람은 시리고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맞는 밤이었다. 어색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다행히 하늘에는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예전집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비록 혼자였지만 공허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보면 기분 탓일까.
맥주캔을 따 한 모금 가득 마셨다. 입안에 머금고는, 천천히 음미하며 목구멍으로 넘겼다. 시원하게 톡 쏘는 맛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마시는 것 같아 더 얼얼하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내 결혼식이었지. 문득 결혼식장에서 내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워주던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았던가, 떨렸던가, 아니면 슬펐던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마치 하룻밤에 꿈처럼 있었던 사실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의 환호, 박수, 떨림, 모든 것이 환영 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 사람은 우리가 결혼은 했지만 이전 나의 삶과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나의 불편함도 만들어주지 않겠다고. 자신만 믿으라고. 나도 그러기를 바랐다. 그래서 신혼집으로 구한 이곳도 온전히 나 혼자 갖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지. 그 사람은 이전에 지내던 오피스텔을 처분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건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었다. 지금쯤 그 사람은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만남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언제나 가는 내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 차를 타고 가던 그 사람의 모습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 너머로 지켜보았었다. 내 눈에 그 뒷모습이 박제되었는지 자꾸만 아른거렸다.
"미친."
그때였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며 자꾸만 깊이 빠져들던 감성적인 내 마음이 다행히 스톱을 외쳤다.
"어, 수찬아. 미안해. 내일 전화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써언! 써언!"
"술 마셨어? 진우 씨랑 마신 거야? 얼마나 마셨길래 그래?"
"내가, 흑, 오붓한 시간을, 흑, 뺏은 건 아니지? 우리 써언 오늘 너어무 예뻐서, 흑, 내가, 흑..."
"우는 거야?"
역시 수찬이었다. 마음이 울컥 달아올랐다. 미안해.
"서은 씨, 미안해요. 찬이가 하루 종일 이렇게 우네요. 제가 잘 달래서 데리고 갈게요. 창윤 씨랑 좋은 시간 방해해서 미안해요."
진우가 수찬의 휴대폰을 빼앗아 나에게 말하고는 금방 통화가 끊어졌다.
"휴우."
긴 한숨이 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내 눈에서 생각지도 못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