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의 불청객

전태일 열사 54주기 추도식

by 지무

전태일 열사 54주기를 맞아 연차를 냈다. 모란공원에서 진행되는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무슨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는 특별한 영감을 준 사람이다. 종속 노동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항상 마음의 빚이 느껴졌다.


노무사를 향하는 길목길목에 전태일 열사가 있었다. 제도 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이 빠져 있는 것에 개탄하며 그를 만났고, 기레기가 되지 않겠다며 노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만났다.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 몸을 불사른 그의 삶의 궤적은 노무사 생활로 이끌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동대문역 근처 집결지로 모였다. 추도식 참석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홀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 중엔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어 환경미화원 같아 보였다.


그는 추도식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인사를 나누는 같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슬렁거리며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모습은 무리의 일원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 닳고 해어진 신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닐봉지는 노숙자를 연상시켰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지린내가 코끝을 스치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추도식 참석 버스가 도착하고 각각의 사연을 담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노숙자로 보이는 그도 몸을 실었다. 그가 든 커다란 쓰레기 봉지는 버스 짐칸에 실렸다.


추도식 버스는 인원 파악을 위해 예약을 받았으나, 참석자와 관련한 특별한 규제는 없었다. 노숙자는 타면 안 된다는 법도 없고, 제지하는 사람도 없기에 그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쪽저쪽을 살피더니 하필 바로 앞에 앉았다. 끝을 스치던 지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냄새를 피해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내가 옮기면 다른 사람이 그 냄새를 맡아야 하고, 사회 약자를 피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낮은 곳으로 향하는 연대 정신과 어긋난다'는 생각에 오도 가도 못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지린내에 붙잡혔다.


모란공원으로 가는 내내 불편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강해지는 지린내가 불쾌했고,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 주최 측이 이해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사회 연대 정신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불편했다. 한 시간 동안 그는 나에게 불청객이었다.


모란공원은 투쟁의 사연을 담은 무덤으로 가득했다. 그 위로 추도식에 참석한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추도식 중에 전태일 노동상 시상식도 있었는데, 아리셀 피해가족협의회 대표가 상을 받았다. 참사 이후 인근 지역에서 진행된 고용구조개선 컨설팅에 참여한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추도식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은 물론 현 양경수 위원장도 줄을 서서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점심은 모든 참석자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 저 멀리 그도 보였다.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고 버스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음속에선 그가 멀리 떨어진 곳에 앉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두 칸 앞에 앉았다. 승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불청객 뒤에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내가 맡은 냄새를 그 사람도 맡게 되면 냄새에 대한 불평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주위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었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분명히 그 냄새가 멀어졌지만 가끔씩 내 코는 반응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불청객 뒤에 앉은 사람들의 불평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 냄새에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비닐봉지를 어깨에 메고 다른 행인들 속으로 사라졌다.


내 마음의 불청객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가 불청객이었을까, 아님 내 마음이 불청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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