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날이 이어지다 보면, ‘조금 덜 아프다’는 게 이렇게 고마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마음이 온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다. 그저 어제보다 덜 무겁고, 어제보다 덜 욱신거리는 마음과 몸이 있다. 그 사소한 차이가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 사람들은 완전히 나아진 날만 기념하려 하지만, 나는 이 ‘조금 덜 아픈 날’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그건 내가 여전히 회복 중이라는,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픔이 일상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게 된다.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오늘은 얼마나 아플까?’를 먼저 가늠하게 된다. 심장이 조여 오는 정도, 눈앞이 흐려지는 정도, 사람들의 말이 마음에 박히는 정도. 그 모든 게 나를 움직이는 척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수치가 조금 낮았다. 여전히 무겁지만, 숨이 막히진 않았다. 여전히 마음이 아리지만, 눈물이 하루 종일 목구멍까지 차오르진 않았다.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이 ‘덜 아픔’이라는 상태는 마치 긴 비가 멈춘 뒤 남아 있는 구름 사이로 잠깐 햇빛이 드는 순간 같다. 완전히 맑아진 건 아니지만, 그 빛이 나를 잠시라도 따뜻하게 한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마음속 구석구석까지 이 햇빛이 닿도록, 나를 괜찮아지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옮겨놓기 위해서. 오늘이 조금 덜 아픈 날이라면, 나는 그만큼의 여유와 숨을 허락받은 셈이다.
아픔이 줄어든 날은 비로소 주변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며칠 전만 해도 눈길을 주지 못했던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소파에 던져져 있던 책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길고양이의 발걸음을 따라가게 된다. 이 모든 게 아픔이 조금 덜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픔이 전부였던 날에는 세상과 연결되는 모든 끈을 끊고 싶었지만, 오늘은 다시 그 끈을 조심스럽게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덜 아픈 날을 ‘회복의 예고편’이라 부른다.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 곧 괜찮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살짝 보여주는 날. 이런 날이 없었다면, 나는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완벽한 변화만을 갈망하지만, 사실 변화는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덜 힘들었고, 덜 무너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픔이 의미를 잃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차이를 느끼며, 내 몸과 마음이 스스로 치유하려 애쓰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상처가 나을 때 가려움이 찾아오듯, 마음의 회복에도 불편함과 미묘한 감정의 뒤섞임이 동반된다. 그 모든 걸 끌어안고, 오늘 하루를 끝까지 살아낸다.
밤이 되어 이 하루를 돌아본다.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다.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았지만, 괜찮아질 가능성을 보았으니까. 내일은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이 내게 가르쳐준 건, 아픔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가능성이 나를 살린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을 믿기로 한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덜 아파서 다행이다. 이 다행이 내일로 이어지길 바라며, 오늘의 온도를 기억해 둔다. 언젠가 완전히 괜찮아지는 날이 오면, 그날은 이 ‘덜 아팠던 날’들이 모여 만든 선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