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마치 한밤중 불 꺼진 방 안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 없이 스며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처음에는 그 존재가 무섭고 낯설었다. 어떻게든 외면하려고 약속을 채우고, 대화를 만들고, 소음 속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은 모양을 바꿔 나를 따라왔다. 아무리 사람들 속에 있어도, 한마디 웃음을 나눠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고요하고 차가운 공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외로움을 적으로 여겼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감정, 어떻게든 몰아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내가 지쳤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감정을 이기려고만 했기 때문에 더 괴로웠다는 걸. 마치 어두운 그림자를 없애려고 더 강한 빛을 찾는 것처럼,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외로움을 밀어내는 대신, 그냥 옆에 두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견디는 편이 나았으니까. 처음엔 쉽지 않았다. 외로움은 여전히 낯설고,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조용히 앉아 그 감정을 들여다보니, 그것이 꼭 적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외로움은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신호였다.
외로움과 손을 잡는 건,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나는 지금 외롭다.” 이 단순한 한 문장을 스스로에게 말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부끄러워하거나, 약한 사람만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인정하는 순간, 그 감정은 조금 덜 날카로워졌다.
다음 단계는 외로움 속에서 나를 살피는 일이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예전엔 무작정 누군가를 찾았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먼저 찾았다. 따뜻한 차를 끓이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오래 미뤄뒀던 책을 꺼냈다. 외로움이 내 곁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그 시간을 나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그렇게 하면 외로움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 나를 위한 방이 되었다.
물론, 이런 연습이 모든 외로움을 없애주진 않는다. 여전히 깊고 짙은 외로움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날이 있다. 그럴 땐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외로움은 파도처럼, 높았다가 낮아지고, 거세다가 잔잔해진다. 중요한 건 파도 속에서도 숨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나는 이제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인다. 나를 더 돌보라는 신호, 조금 쉬라는 신호, 혹은 누군가에게 솔직해질 때가 됐다는 신호. 외로움과 싸우는 대신 손을 잡고 걸어가면, 그 길 끝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있다.
외로움은 적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게 해주는 동반자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혼자 있는 시간도 예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됐고, 나를 더 잘 사랑하게 됐다. 외로움과 손잡는 방법은 결국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