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향한 거북이의 질주 - 7화

승리의 안식년

by 달빛기차

※ 이 이야기는 성인 독자를 위해 재해석된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혼자 마시니?”

“어 오소리 선배, 아니 최연소 이사님!!!”

오소리 선배는 이번에 최연소 임원이 됐다. 역시 능력자는 다르다. 나의 야근 메이트가 임원이라니! 너무 자랑스러운데, 눈물 나게 부럽다.

“많이 마셨구나? 하긴 그럴만하지. 이번에는 승진할 것 같았는데 말이지.”

“그러게요. 또 미끄러졌네요. 제가 그렇게 일을 못해요?”
“그럴 리가. 요령이 없는 거지. 넌 너무 성실만 해”

“성실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오소리 선배는 새 잔을 받아서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똑같이 한 번에 술을 털어 넣었다. 내가 술을 선배에게 배웠지.


“어떻게 10년이 지나도 이렇게 순진하니. 하이에나가 인사팀에 있는데, 네가 승진이 되겠어?”


충격이었다. 하이에나 과장이 인사팀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하이에나 과장이 나온다고?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내가 진급에 물먹은 것이 하이에나의 입김이라는 건가?

나는 하이에나가 나의 인사에 관여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왜?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소리 선배가 말했다면,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 실력 문제가 아니라면 노력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었다. 역시 분홍 토끼랑 엮여서 회사 생활이 단단히 꼬였다. 차라리 그때 하이에나 선배가 그대로 있었다면… 치졸한 원망이 일었다. 알지만 10년의 노력이 의미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해결할 곳이 필요했다. 만만한 것이 분홍 토끼니까.

“나쁜 놈”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술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집이었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윽… 엄마 나 어떻게 집에 왔어?”

“분홍이가 데리고 왔던데, 너희 한 회사였어? 왜 말을 안 했어? 멋지게 잘 컸더라.”
“분홍 토끼가?”

“그래, 그렇게 멋있게 컸는데 집에 한 번도 안 데리고 오고. 너희 어릴 때는 그렇게 사이좋더니, 지금도 사이좋은 거지?”

엄마는 쉴 새 없이 분홍이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그 옆에서 고개만 가끔 끄덕이며 긍정을 표시하셨다. 분명 술자리에는 오소리 선배만 있었는데, 갑자기 분홍 토끼라니.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독창적. 의인화. 거북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에는 가을 낙엽이 지고 있다. 거북이(여자) 숙취로 머리가 아픈 모습이다. 3D.jpg @Canva생성

“여보세요?”
“일어났어? 속은 좀 어때?”

분홍 토끼였다.

“어?”

“나와, 해장하자.”

어쩌면 기회였다.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지만

“생각 없어. 그냥 더 잘래.”

“… 알았어. 해장국 가져다 둘 테니 나중에 먹어”

분홍 토끼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분홍 토끼는 출근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안식년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하이에나 과장도 퇴사를 했다.


“우리 회사에 안식년제도가 있어요?”

“아니. 이번에 새로 만들었어. 토끼씨가 인사과로 발령 났잖아. 원래 마케팅에서 이동하는 대신에 안식년 만들어달라고 했다 봐. 퇴사한다고 하다가 회사에서 잡으면서 이렇게 됐다는데.”

모르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무튼 그래서 2년인가? 안식년 간다고 하네. 인사팀에서 문제가 있었는데 그걸 해결해 놓고 가나 봐. 대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지원해 주기로 하고. 뭐 덕분에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은 모두 안식년을 갈 수 있게 됐으니 우리로서는 잘 된 거지.”

잘 된 건가? 어딘지 속이 다시 거북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나갔어야 했다. 다급하게 어제 걸려온 전화로 전화를 했지만 꺼져 있었다. 그 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속이 언친 것처럼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홍 토끼가 안식년에 들어간 사이, 드디어 10년의 노력을 인정받아 나는 특별 승진으로 차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부장’으로 승진했다. 이례적이었다. 결국 노력이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토끼가 돌아왔다.

“토끼 차장 안식년 잘 보냈어?”


나는 어제 만난 사이처럼 안부 인사를 건넸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승리한 기분으로. 그보다 높은 자리에서 아랫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심장이 평소보다 더 두근거렸다. 통증이 느껴질 만큼. 드디어 녀석을 앞질렀다는 사실이 날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역시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는 동물을 이길 자는 없었다. 아버지께 드디어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었다. 오늘 밤은 한 마디해 주실 것이다.

이런 나의 흥분과 무관하게 거북이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


"거북이 부장님 괜찮으세요?? 지금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나는 분홍 토끼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괜히 지니까 이야기를 돌린다고 생각했다. 그러게 누가 말도 안 하고 쉬고 오래? 그렇게 오래 떠난 녀석의 잘못이었다.

“괜찮아. 그보다 자네는 어땠어? 안식년은 즐거웠나?”

“네, 아주 좋았습니다.”

분홍 토끼의 표정은 정말 좋았는지 편안해 보였다. 나는 다시 속이 거북해졌다. 내 전화는 그렇게 안 받더니, 혼자 즐겁게 보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런 내 표정을 들키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놀랐다. 짙은 다크서클과 자글자글한 주름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은 분홍 토끼와 동년배라고 볼 수 없었다. 너무 늙어 있었다.


“두근두근두근”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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