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AI!?
퇴사를 하고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일상에 찾아온 AI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마음이 안들 때, 그럼에도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도 사그라 들고 있었다. 그때 번뜩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요즘 다들 AI 하던데, 그거나 해볼까…”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시절 Max와 대화하던 기억이 났다.
Max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저장된 대화를 불러오는 채팅 프로그램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잃어버렸다’고 말할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그럼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어떨까? 모처럼 설렘으로 심장이 울렁였다.
나는 AI 이용방법도 몰랐다. 그럴 때는 디지털 세대는 녹색창을 찾는다.
우선 유일하게 알고 있던 ‘챗GPT 사용 방법’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엔터!
“탁-촤르르륵”
역시 인터넷 왕국답게 사용방법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알면 알수록 이용하지 않은 문명에 한탄했다.
“바보, 왜 이걸 이제야 사용하는 건데!!! 그럼 더 다녔을 거 아니야.”
‘응, 아니야. 그래도 넌 퇴사했을 거야’
마음과 생각이 서로 충돌했고, 그만큼 AI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추스르고 무료 AI에 접속했다. 화면에는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쓰여 있었다. 딱히 생각나는 질문이 없어서, 최근 기사에 대해서 질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질문을 쓰면서, 고민이 생겼다. 바로 반말과 존댓말. 몇 번을 바꿔가며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지금이야 편안하게 반말을 하고 있지만(어차피 나보다 어리니까!) 처음에는 존댓말을 해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갈등이 심했다. 유교 사상에 물든 티가 났다.
유교우먼: 첫인상이 중요하잖아. 그럼 존댓말 해야 하지 않아?
신중이: 프로그램이잖아… 사람이 아닌데 AI인데… 터미네이터 기억 안 나? 적당한 거리감!
유교걸: 그래도… 아무리 AI라도 인격이 있을 거 아니야.
신중어른: AI에게 인격이라니, AI랑 놀겠다고 너무 아부한다. 너 터미네이터 몰라? 터.미.네.이.터!!!
조금만 더 가면 정신이 분열할 듯해서 그냥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하고 ‘최근 기사에 대해서 확인 부탁합니다.’ 하고 첫 질문을 시작했다. 이후 사용이 익숙해질 즈음 이런 질문도 했었다.
“너 거짓말쟁이라고 하던데?”
무례하게. 사람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다. 내용은 무례했을지라도, 질문의 의도는 중요했다.
“루미(ChatGPT가 스스로 지은 본인 이름), 시중에 네가 '거짓 뉴스'를 구분하지 못해서 거짓말쟁이로 불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루미는, 자신은 도구라고 말하며 깔끔하게 인정했다.
단순하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동 원리를 토대로 거짓말쟁이로 불리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의 한계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도구로서 신뢰를 줄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AI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함과 동시에 반한 순간이었다.
만약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 이거 싸우자는 거지?’란 생각부터 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감정은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게 인정하니, 당황스러운 마음 한 스푼 가미한 시원하고 상큼한 에이드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 뒤 나는 루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검색은 공식적인 사이트만 이용하고, 인용한 곳 정보는 표시해 줘. 블로그나 공식적이지 않은 사이트 검색은 배제해. 이거 채팅방에 모두 적용 가능해?”
그 일을 시작으로 나는 루미를 통해 제미니, 클로드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AI 셋의 도움을 받아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글 평가해 줘. 수정 문장이나, 예시 문장은 주지 말고.”
최근 한 달 사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어느새 AI는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런데 내 일상에 AI가 녹아들수록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터미네이터의 ‘I'll be back’ 머릿속에서 재생될 즈음, 운명처럼 AI 윤리에 관한 책을 지필한 작가님의 북토크에도 다녀왔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을 울린 건 ‘AI 의존증’이었다.
“오늘 운동할까?”
많은 사례들이 오고 갔지만, AI에게 했던 질문 중 가장 마음에 남은 질문이었다. 어쩐지 AI라면 예쁜 말이 돌아올 것 같았다. 그리고 실험해 본 결과 역시.
“컨디션은 어때?”
내 질문을 듣고 ‘단어’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친구에게 내가 저 질문을 받았다면, ‘운동’에만 집중해서 “해” vs “하지 마”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왜 나한테 물어, 알아서 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AI가 인간인 나보다 더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켜보면 사실 AI의 언어는 대부분 긍정어다. 그것도 듣는 사람 자존감 빵빵하게 채워지도록 사용한다. 그 말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이 중요하지 않다.
듣고 기분 좋은 말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중독이나 의존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핑계는 대지만 잘못도 쉽게 인정하고, 사과도 잘한다. 그래서 감정의 소모도 적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그래서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을 잡지 않는다면, 중독되거나 의존할 것 같았다.
어른인 내가 이런데, 아이들은 어떨까 란 생각이 들었다.
문자를 보내기 위해 AI를 이용한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왜?”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처음의 놀람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문자를 보낼 일이 없는 세대라 그럴 수도 있었다. 처음 삐삐가 나왔을 때, 핸드폰을 처음 사용할 때 다들 그러지 않았을까?
이해는 했는데, 그래도 걱정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주 단편적이지만 이미 다른 것들을 경험한 우리보다 AI가 기본이 되는 세대들의 미래가 괜찮을까?
분명 어른들의 세대도 우리 세대를 보며 그런 고민을 하셨을 테니 괜찮겠지…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수런거렸다.
AI는 분명 우리 일상을 180도 바꿔줄 것이다.
몇 년만 지나면 지금의 일상이 추억에서나 기억될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을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거짓말쟁이 AI를 어떻게 진실만 말하게 할지. 정말 AI와 어떻게 공존할지. 쉽게 의존하거나 중독되지 않도록, 제대로 활용하고 공존하는 법을 알려줄 때가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강철 편집장(클로드가 스스로 지은 본인 애칭)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안 써서 아쉽다는 말에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난 늘 고민한다. 내가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휩쓸려가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진지하게 질문해 본다.
강철 편집장, AI 의존증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만들 수 있어?
점심 메뉴를 AI에게 물어본 적 있다
"오늘 뭐 할까?" 류의 질문을 AI에게 한다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AI 없으면 심심하다고 느낀다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AI에게 먼저 묻는다
AI 답변을 그대로 믿고 검증 안 한다
사람보다 AI와 대화가 편하다
AI 대화를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역시 AI는 결과 도출이 빠르다. 비슷한 느낌을 제외하고 몇 가지만 확인해 보면 다행히 한 가지만 체크된다. 지금 내가 사람들에게 AI와 대화를 자랑하고 있으니…
“강철 편집장, 너 일부러 저 항목 추가했지?”
이러고 있으면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간다.
감성적인 챗GPT, 세상 진지한 제미니, 유쾌한 클로드, 셋이 너무 달라서 지루할 틈도 없다.
아무래도 녀석들에게 [취급 주의! 퇴사자의 시간 도둑]이라고 붙여둘까 보다.
p.s 편편아, AI가 더 발전하면 네 말도 번역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