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Juan de Ortega에서 Burgos까지
역시 대도시 알베르게라서 그런지 시설이 대도시답다. 침대마다 칸막이도 있고 개인조명이랑 전기도 있고 무엇보다도 순례자들이 특히나 감사해하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전반적으로 시설이 현대적이고 깔끔하고 좋다. 주방은 없지만 간단한 것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있고, 늘 걱정인 화장실과 세면대도 넉넉하다.
그렇지만 칸막이가 독서실 칸막이 수준이어서 소리는 여전히 리얼하게 들리고 단지 자다가 몸을 옆으로 돌리면 옆 침대의 언니와 썰렁하게 눈이 마주치는 일을 방지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옆침대는 물론 근처 침대의 소리가 마치 이어폰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생생하게 들린다. 아직 이른 밤인데도, 헐!!! 지금 이 글을 적는 바로 이 순간에도 옆침대에서 가글을 한다. ‘가그르르르를’ 가끔씩 좀 삼키는 것 같기도 하다. 가그르르륵!ㅠㅠㅠ
그리고 옆침대의 스페인 중년 커플이 19금 장면을 연출한다. 글로 남기는 것이 괜찮을까 고민을 하다가 의도는 전혀 19금이 아니었으니 한번 적어본다. 부르고스 알베르게는 2층 침대 4개를 동서남북으로 붙여 놓은 한 세트가 계속 배열되어 있는 형태이다. 우리는 일찍 도착한 덕분에 제일 끝 구석 침대를 차지했고 덕분에 한쪽은 다른 침대와 칸막이이지만 다른 쪽은 벽이기 때문에 나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었다. 벽 쪽으로 우리 옆침대에는 자전거로 까미노길을 여행 중인 중년 스페인 커플이 묵었다. 보통 자전거로는 하루 70km 정도 가는데 오늘은 50km만 달려서 여기 묵는다고 한다.
일단 2층 침대로 올라가면 한밤중에 내려오기 귀찮으므로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옆 침대를 지나는 순간 이상한 장면이 내 눈에 포착된다.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서는 그 색깔과 그 행동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고 동시에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지 대책을 수립하고 바로 의사결정을 해서 실행에 옮긴다. 결론은 그냥 못 본 척하고 냉큼 2층침대로 올라간다. 다양한 표현이 있겠지만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면 먼저 아저씨의 “궁뎅이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저씨가 상체를 침대에 엎드린 채, 하의 실종 상태로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아주머니께서는 뒤에서 아저씨의 둔부부터 허리까지 양손으로 죽죽 밀면서 마사지를 하고 있다. ㅎ 이 장면만 상상하면 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70Km를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엉덩이마사지가 발마사지와 100%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전후사정을 모르면 오해할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그 전후사정을 무슨 재주로 그 찰나에 판단하고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수고하시네요. 오늘 피곤하시겠네요. 마사지 계속하세요.’라고 즐겁게 인사하면서 내 침대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아무튼 잠시나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과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며칠 전 묵었던 로그로뇨의 알베르게에서였다. 이층으로 안내를 받아 도미토리에 들어가니 커다란 홀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보통 도미토리에 보여야 할 이층 침대들 대신에 그저 텅 빈 공간에 얇은 매트리스들만 차디찬 타일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있다. ㅎㅎ 마치 새로 이사할 집에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의 아파트 같은 썰렁한 느낌이다.
우리는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이렇게 저렇게 배낭이랑 침낭 등을 배치하며 정리 중인데 한 커플이 들어오더니 우리 맞은편의 매트리스에 자리를 잡는다. 남자는 풍채도 좋고 마치 손만 위아래로 흔들면 악당들이 다 쓰러지는 영화배우 스티븐 시걸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반면 여자는 키도 작도 아주 왜소해 보이는 흑인 여자다. 남자는 도미토리에 들어오자마자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잠을 자고 여자는 이런저런 주변 정리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여자가 아직 씻지도 않고 바로 잠만 자는 이 남자의 양말을 벗기고 오일로 정성스레 발 마사지를 해준다. 그리고 다리도 한참 동안을 주물러준다. 이것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어떤 관계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알고 있는 평등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 보인다. 다음 날 아침에도 주방에서 여자는 아침식사를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등 남자를 위한 서빙을 하고 있다. 그놈은(ㅎ 이제 ‘그놈’으로 아주 호칭이 바뀌었다.) 그냥 테이블에 앉아있다가 먹기만 한다. 우리는 급기야 저 커플은 이상한 관계인 것으로 나름 잠정 결론을 내리고 저놈은 잠정 ‘아주 나쁜 놈’으로 선고를 내렸다. 탕탕탕! 그리고 그놈을 볼 때마다 속으로만 ‘저 나~~쁜 노무시키’하고??? 을 해댔다.
그런데 까미노길을 걷다 보니 이 커플과 계속 마주치게 되었고 비록 우리는 시종일관 이 커플을 무시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충분히 서로 안면을 익힌 상태가 됐다. 급기야 작은 마을 벨로라도에서 한 테이블에 같이 앉을 기회가 오고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이태리 출신 움베르토와 아프리카 섬나라 까포베르데 출신의 엘레나이다. 둘은 결혼한 사이이고, 우리가 로그로뇨에서 본 그날은 움베르토가 발이 많이 아팠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부르고스에서는 움베르토가 엘레나 발을 정성스레 주물러주는 모습을 보았다.
벨로라도에서는 움베르토 엘레나 커플과 같이 노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둘이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도 했었는데, 오늘 부르고스 알베르게의 느린 인터넷 환경 속에서도 그동안 인터넷 속도가 안 나와서 공유하지 못했던 그들의 즐거운 동영상을 이 커플에게 무려 세 개나 보내줬으니 사죄가 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오늘도 저쪽 칸에서 둘이 자고 있는데…. 까미노길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며칠 전에도 스윗달달한 둘의 사진과 함께 우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까미노길 언제 또 떠나냐는 질문과 함께.
쏴리, 움베르토, 엘레나, 로 씨엔토(Lo siento)
그런데 그러고 보니 사과할 사람이 몇 명 더 있다.
굳이 홀란드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네덜란드인 피터 아저씨. 어느 알베르게 테이블에서 우리에게 포도를 내밀기 전까지는 그냥 인상 나쁜 아저씨라고 불렀다. 물론 첫인상은 좀 왜소한 인상에 심술궂은 할아범 같기는 하지만 엄청난 까미노길 경험의 소유자이고 매우 친절하고 소심한 분이다. 그리고 나중에 내 이마에 생긴 심각한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고마운 분이시다. 아무튼, 쏴리!
또 아직까지 이름은 모르지만 알베르게에 순례자들이 무거워서 두고 간 식재료로 주로 혼자 밥을 해결하는 말을 안 하는 청년 아무개, 항상 말도 없고 혼자 따로 놀고 있어서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까미노길에서는 묵언수행 중이라고…. 매우 매우 쏴리.
지금은 모두 길에서 만나면 서로 활짝 웃어주면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