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프렌치라서…

Belorado에서 San Juan de Ortega까지

by Sal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언덕,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좀 높고 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은 언덕을 넘어가는데, 산정상에 조금 못 미쳐서 휴게 공간이 보이자, 별로 배도 고프지 않은데 조금이라도 쉬어 보겠다는 핑계로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어제 장본 것들을 꺼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이렇게 이른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반갑게도 프랑스어 선생님, 피에르가 저쪽에서 걸어온다. 그리고 우리 옆에 앉아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런데 피에르도 배낭 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데 슈퍼에서 장본 것을 봉지째 그대로 꺼낸다. 비닐봉지에는 바게트, 소시지, 치즈, 오이, 당근, 꿀 병, 말린 자두 등…


피에르 왈, 자기가 저녁 한번 사 먹을 돈으로 슈퍼에 가서 음식을 사면 다섯 끼를 먹을 수 있다고, 그러면서 이제 좀 돈을 아껴 써야겠다고. 자식 철들었군. 아직 젊은데? 그리고 우리는 또 우리 속도에 맞춰 먼저 길을 출발한다.


오늘 묵을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도 역시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마을에 음식을 살 슈퍼도 없고 알베르게도 많지 않았다. 덕분에 약속이라도 한 듯 피에르도 우리와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숙소 앞 햇빛 쨍쨍 광장 파라솔 아래에서 채도 100%의 샛노란 맥주를 마시며 태양을 피하고 있는 중인데, 피에르가 또 나타난다. 별로 그와 친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카모마일차와 꿀 한 병, 그리고 석류 하나를 가지고 같이 앉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나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피에르는 프랑스 사회보장제도, 유럽의 이민자 수용문제를 그리고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책 이야기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는 서로 즐겨 듣는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이곳 알베르게는 유료 저녁식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주방시설이 없다. 다만 다이닝룸과 그곳에 있는 전자레인지는 사용가능하다. 오늘 요리를 해 먹기 위해서 먹을 것을 잔뜩 산 우리나 피에르는 이 무거운 먹거리를 버릴 수도 없고 또 더 지고 갈 수도 없어 고민 끝에 배낭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배낭 속 먹거리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간장계란 비빔밥과 참치 캔, 꽁치 캔, 올리브 캔 그리고 이전 마을에서부터 이고 지고 가져온 소중한 와인 한 병을 꺼냈고, 피에르 역시 점심때 보따리를 다시 꺼냈다. 오이, 당근, 치즈, 소시지, 카모마일티와 꿀차. 보나페띠! 아니 스페인어로 부엔 프로베쵸(Buen Provecho)!


저녁식사 후에 알베르게 앞 광장에 나오니 광장바닥에 순례자들 예닐곱 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그런데 피에르가 스트레칭 지도를 하고 있다. 선생님 본능이 살아났나? 처음에는 피에르가 지도를 하는 듯하더니, 조금 후에는 훨씬 더 유연한 이스라엘 언니가 리드를 한다. 오른쪽 종아리가 정상이 아니기는 하지만 나도 끼어서 하나, 둘 하면서 요가 매트도 없는 광장바닥에서 드러누워서 스트레칭을 한다. 바닥에 바로 앉기가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뭐 까짓 거, 다들 하는데…. 넓은 광장의 돌바닥에 스트레칭을 핑계로 동그랗게 누워서 하늘을 보니 하늘이 참 높고 넓고 파랗다. 내가 그렇게 키가 많이 큰 편인가? 평상시보다 그 1m 조금 더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본다고 하늘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나도 다리가 삐그덕거리지만, 이 까미노길에서 어디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옆에서 앞에서 스트레칭 자세가 바뀔 때마다 뿌드득, 삐그덕, 낑낑 소리에 스트레칭이 아니라 마치 접골원에 온 것 같다. 모두 나 혼자만 환자가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운동이 거의 끝날 때쯤 되니, 공교롭게도 교회 종소리가 땡땡땡 울린다. 원래 이런 우연에 무언가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좀 닭살, 유치, 오글오글이라서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작은 마을의 한적하고 넓은 광장 + 삐그덕 스트레칭 + 서서히 지려고 하는 석양 + 광장 한편에서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 = 오글오글 멘트’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피에르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피에르는 수비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우리 침대 맞은편 침대에 있었고 그때에도 우리 침대와 자기 침대의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도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스트레칭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도 역시 알베르게 바깥의 마당에 누워서 전자담배를 피우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방바닥이나 광장바닥이나 마당이나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햇살을 좋아하는지, 바람을 좋아하는지,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가 틀 안에 있어야 안심이 되고 일정이든지 향후 진로든지 확실히 정해져야만 머리가 아프지 않고 마음이 놓이는 우리네와는 좀 다르다.


프랑스 사람들이 다 피에르 같지는 않겠지만 일단 이 친구가 프렌치를 조금이나마 대표한다고 가정한다면, 프랑스인들은 우리가 비교적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옷, 위생, 건강, 돈 등에 대해서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무리 깨끗해 보이는 광장 바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모두 신발을 신고 다녔던 곳인데, 우리 같으면 적어도 물티슈 한통은 다 쓰면서 닦은 후에야 앉지 않을까 생각되는 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서 다리를 죽죽 찢고 있으니 다르다. 우리와…. 먹는 것도 우리는 제일 간단한 라면을 먹더라도 조리할 불과 물이 있어야 하지만, 또 나는 여기에 말아먹을 찬밥도 필요하지만, 이 친구는 바게트와 치즈와 햄만 있으면 된다. 그냥 들고 다니다가 배고프면 아무 곳이나 앉아서 프랑스 전통의 오피넬 주머니 칼을 꺼내서 한쪽씩 잘라서 먹으면 한 끼 식사가 된다. 실제로 프랑스 명품백은 프랑스사람은 별로 안 찾는다고 하더니, 식도락의 첨단을 걷는 프렌치 레스토랑도 외국인전용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문화의 차이일 수는 있지만, 아무튼 여행 시에는 저쪽 서쪽 사람들의 식습관이 우리네보다는 참 편해 보인다. 하지만 대신 우리는 아니 ‘나’는 무거워서 좀처럼 안 가지고 다니는 책은 얘네들은 꼭 들고 다닌다. 우리 기준에는 위생적인 면, 먹고 입는 면에서도 좀 더 자유롭지만 여행 중에도 뭔가 읽어야 한다는 점은 필수항목인가?


걸을 때 입는 옷은 해져 있고, 비옷은 비옷이라고 간신히 부를 수 있는 수준의 너덜너덜 상태이지만, 레온 같은 대도시의 바에 갈 때면 여행 내내 무겁게 가지고 다니던 청바지를 꺼내 입고 다닌다. 그러고 나서는 바에서 만난 종업원 언니에게 무슨 작업을 했는지, 그 언니에게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돌아서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언니가 달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번호를 주었다는 태도로 양어깨를 으쓱하면서 한마디 한다.


“I am French…!!!”

아… 재수 없는 놈…. ㅋㅋ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