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 오~~~래된 것들

Astorga에서 Foncebadon까지

by Sal

오늘도 25km를 가야 한다. 아침 7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8.6km를 걷고 세 번째 마을에 도착해서야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9시 반에 출발해서 약 11km를 걷고 또 휴식이다. 오늘 목적지까지 5km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쉽게 보았던 마지막 5km는 계속된 심한 오르막 길이었고 이미 20km를 걸은 뒤라서 발바닥도, 발목도, 다리도 아픈 상당히 힘든 마지막 5km였다. 역시 까미노길에서 쉬운 길은 하나도 없다.



천주교 교구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오래된 수도원이나 성당을 수리하여 알베르게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내부도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급적 그대로 살려서,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오래된 나무의자, 전통 있는 벼룩시장에서나 보일 법한 나무 십자가나 부서진 그림액자 그리고 묵은 먼지들이 낀 소품들이 종종 보인다. 건물 외관도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돌벽과 돌기둥들이다. 자려고 이층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담벼락 못지않게 연로한 티가 나는 나무 서까래와 서까래에 매달린 색이 바랜 청동? 조명 그리고 그 색 바랜 조명에 매달린 그로테스크한 거미줄이 왠지 이 수백 년 된 건물 안에 있는 꼴랑 수십 년밖에 되지 않는 나를 쫄게 만든다.


최신식 번쩍번쩍 조명의 건물들도 관광지가 되지만 이렇게 오~~래된 것들이 관광지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아마도 우리는 아주 길어야 백 년밖에 살지 못하지만, 이렇게 수백, 수천 년 오래된 것들 옆에 있으면 우리의 유한성을 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 때문에 오래된 것들 또는 오래된 곳들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고 보면 항상 우리는 뭔가 좀 센 것에 기대어 그 후광의 덕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명문고에 다니면 명문고 학생처럼 저절로 성적이 좋아지고, 명문대에 다니면 저절로 취업이 잘되고, 좋은 기업에 다니면 저절로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안 됩니다. 꿈 깨세요.


나무 데크, 원목 벤치, 돌담길, 아름드리 큰 나무, 로마인들이 깔아 놓은 돌길, 수백 년 된 성당들, 이제는 흔적만 남은 천년 전의 성벽 흔적 등등. 왜 이런 곳에 가고 싶어할까? 어쩌면 수만 년 전의 토테미즘, 샤머니즘 등 각종 ‘머시기즘’들이 아직도 우리 DNA 속에서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커서 보면 옛날 생각이 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우리 인류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묵었던 아스토르가에서 230km 정도 떨어진 아타푸에르카(Atapuerca)라는 곳에는 8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시대인 ‘홀로세’가 약 1만 2천 년 전에 시작되었으니 80만 년 전이면 그 홀로세의 전 지질시대인 ‘홍적세’ 때부터 이 동네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말이다. 허허허. 좀 이해를 돕자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가 꼴랑 2천 년 되었고, 그 2천 년 전으로부터 다시 ‘79만 8천 년’ 전부터 그분들이 여기에 사셨다고 한다. 저절로 존댓말이 나온다. 아주아주 오래되신 분들이다. 당연히 관광지로 인정!!!


까미노길에서 가장 인기있는 마을 중의 하나라고 하는 아스토르가 (Astorga)는 아주 예쁘고 매력적인 마을이다. 마을 자체가 해발 800m 이상에 위치한 데다가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는 그 도시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알베르게의 베란다는 까미노길 최고의 뷰 (내가 모두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본 곳 중에서)를 제공하고, 그 뷰와 함께 와인을 마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아스토르가도 약 20만 년 전부터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고 하니 여기도 사람들이 산 지 참 오래된 곳이다. 하지만 아스토르가는 다른 이유로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안겨준 곳이다. 까미노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용한 ‘2인실’을 배당해 준 곳으로…. 무챠스 그라시아스!!!




꼭대기


까미노길은 마을이라는 점을 계속 연결하는 긴 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항상 그 마을은 그 지역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점마다 끙끙거리며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다음 마을에서 또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역을 해야 한다. 물론 평지에 있는 마을은 제외이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교회 또는 알베르게들이 위치해 있다. 항상 꼭대기에…. 정말 싫다.


가끔씩은 좀 마을이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꼭대기가 뭐가 좋을까? 생각해 보면 요즘은 전망 빼고 별로 좋을 것도 없다. 낮은 곳도 좋은 점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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