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Cebreiro에서 Triacastela까지
어제에 이어서 계속 발목이 아프다.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종아리 앞의 근육이 멍든 것처럼 쉬지도 않고 시종일관 끊임없이 부지런히 아프다. 우리 코의 후각세포는 ‘선택적 피로현상’이라는 것이 있어서 동일한 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면 매초 2.5%씩 그 민감성이 감퇴되어 약 1분이내에 70%가 [1] 소멸한다고 하는데, 내 종아리의 통증세포는 매초 새로 업데이트를 하는지 민감성이 감퇴되기는커녕 계속 증가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다.
잠시 같이 걷던 마이크는 나에게 한번 먹어보라고 진통제를 주고 마사지 오일도 내민다. 한국 모녀 일행은 여기 약국에서 파는 소염제와 근육이완제를 한번 사서 먹어보라고 권하신다. 그런데 당분간은 계속 시골 마을을 걷는 구간이라서 도시에 가야지 그런 약을 파는 약국이 있을 것 같다. 어떤 분은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이니 짐을 동키서비스로 보내서 발목에 하중을 줄여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많이 아플 때에는 그냥 좀 비싸더라도 평점 좋은 사설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며칠 푹 쉬어야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다. ㅎ
사실 이 모든 방법들은 딱히 나도 모르는 방법들이 아니다. 나도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는 이미 수비리 가는 길에 먹었고 효과도 보았고, 동키서비스를 사용해서 배낭을 보내면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내심 최종 목적지까지 내 배낭은 내가 직접 메고 걸어보겠다는 소심한 도전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굳이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것이고, 사설 알베르게의 개인실이야 너무나 훌륭하겠지만 우리 예산에서는 비싸니까 가지 않는 것뿐이다. 하나하나 모두 훌륭한 솔루션들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실효성 없는 해결책을 제안해 준다.
그런데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다지 영양가 없는 이런 솔루션들을 이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도대체 왜 나에게 알려주었을까? 마땅, 응당, 타당, 지당하고도 또 당연하게 그분들은 내 사정은 구체적으로 알 리는 만무하고 그저 나를 돕기 위해 본인들이 나와 유사한 상황에서 효과적이었던 경험을 공유했던 것이다. 우선 내가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하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냥 본인이 이렇게 해봤더니 효험이 있으니, 나에게 가르쳐 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고마운 마음들을 내가 처한 상황에서의 제약조건과 개인적인 원칙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면서 하나하나 평가를 하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되고 계속 퇴짜만 놓고 있더란 말이다. 나를 걱정해서 해 준 얘기인데 일단 마음은 온전히 받고, 실행여부는 내 사정에 맞춰서 내가 정하면 될 텐데, 그 마음조차도 툭툭 쳐내고 있으니 나는 정말 ‘이런 고~~~얀 놈’이다.
물론 프랑스혁명 때 앙투와네트 왕비처럼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2]라고까지 말하면 안 되겠지만, 설사 이런 말을 했다고 치더라도 그 말을 하는 마리 앙투와네트(Marie Antoinette)의 무지를 욕하지 호의까지 곡해하지는 말자.
나를 위한 여행
까미노길에 왜 왔냐고 물어보면, 혼자 생각도 하고, 그동안의 인생 정리도 하고, 앞으로의 인생계획도 세우고, 차분히 자연도 즐기고… 이런 말들을 하는데, 본인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작 타인에게는 그럴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길이 예뻐서, 나무가 예뻐서, 들판이 예뻐서, 구름이 예뻐서 차분히 감상하면서 걷고자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서 말을 건다.
조금 전에는 아이들과 통화한 후에 그 대화를 복기하면서 아이들 생각을 좀 하려고 하는데, 또 누군가 쓱 옆에 나타나 말을 건다.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둘이서 조용히 와인 한잔을 하려고 앉았는데 스윽 나타난다. 저녁 몇 시에 먹느냐고 묻는다. 같이 할까요? 아침에 언제 출발할지는 우리도 아침에 눈을 떠봐야 아는데 내일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묻는다. 같이 출발할까요? 난 사진 찍히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괜히 본인 기억력 탓을 하면서 묻지도 않고 한 장…. 혹시 나도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적어도 여행은 오롯이 ‘너! 당신! You! Yourself!’를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들 바쁜 시간, 귀중한 시간 쪼개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건들지 마라, 건들지 말자. 두 번째 ‘건들지 말자’는 남이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남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싫어하면서 나도 모르게 정작 내가 다른 사람들 뒤에 쓱 나타나서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 혹시 ‘2.5% ⅹ 60초’를 계산해 보고 40초면 100% 소멸이라고 하는 A 같은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오랫동안 냄새를 맡게 되면 냄새를 맡는 능력은 곧 마비가 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궁금하면 인터넷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2] 실제로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있는 기록을 당시의 혁명세력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말이라는 얘기도 있다. 제가 직접 듣지 않아서 저는 잘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