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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5

50장의 종이 위에 드러난 진실

by 장마철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내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50장의 종이 위에 드러난 진실



다음날 마철이는 법원 민원실로 향했다.


"확정일자 부여현황을 발급받고 싶습니다. 건물 전체 보증금 현황을 알고 싶어서요."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본인 건물 아니면 그런 서류는 안 나갑니다.

개인정보예요."


단호한 말투였다.

익숙한 태도.

일 년 여 전 동사무소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개인정보라서 안 된다’는 말만 반복되었고

부동산 카페의 익명의 사람들은 다

‘법원 가면 된다’고 했었다.

부동산 카페에서 수 없이 본 조언.


마철이는 손에 쥔 번호표를 꼭 쥐며 말했다.


"이 건물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입니다. 경매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요. 전세 세입자가 몇 명인지 보증금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부동산 설명과는 너무 달라요. 허위 중개를 확인하고 신고하기 위한 거예요. 개인정보는 외부에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진짜, 저..."


목이 메었다. 입 안이 바짝 말라가고, 눈앞이 흐려졌다.

도움이 절실했던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눈물이 마철이의 눈에 맺혔다.

그걸 본 직원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철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순간적으로 연민이 스쳤다.


"아이고... 무슨 일인가요. 주민등록증 주세요. 신고하실 거죠? 그럼 10년 치로 뽑아드릴게요. 수수료는 장당 600원인데, 좀 오래 걸릴 거예요. 이거 쉽지 않은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철이는 긴 복도에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햇살이 창문 너머로 들이치고 있었지만 그 햇살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속을 타들어가게 만드는 불빛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손에 쥐어진 노란색도트가 박혀있는 배경에 가운데는 파란색 법원마크가 크게 박힌 50장이 넘는 확정일자 부여현황.


10년간 이 건물에서 퇴거하고 입주했던 사람들의 호수, 보증금, 전입일자, 확정일자까지 낱낱이 적혀 있었다.

‘한 층에 전세는 1~2세대밖에 없다’던 부동산 사장의 말은 명백한 거짓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건물 전체 40세대가 오래전부터 모두 전세였고, 보증금 총액은 부동산이 말한 4억을 훌쩍 넘었다.

마철이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자신의 배당순위를 계산했다.

거의 20번째 순번이었다.


이전에 자신이 단톡방에서 알렸던 대로 경매 개시 전 전입신고를 했던 몇몇이 뒤쪽에 있었다.

비고란엔 이런 문구도 적혀 있었다.

‘200x년부터 거주 중이었으나 201x년에 전입신고함.’


그 순간 마철이는 깨달았다.

같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보다 며칠 먼저 전입신고한 이가 부러웠고 며칠 늦게 신고한 이를 보며 안도했다.


“사람이 같은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악해질 수 있구나.”


그날 하늘은 유독 노랬다.





다시 부동산을 찾았다.


“사장님, 말씀이 다르시잖아요. 전세 세대가 30세대 이상입니다. 자, 이 서류 보세요.”


마철이는 묵묵히 50장의 열람원을 내밀었다.


부동산 사장은 마철이를 위로하려 했다. 집주인이 문제라며 말했다.

그러더니,


"저… 그 서류 저한테 주실 수 있나요?"


순간 마철이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사장님, 이거 개인정보예요. 못 드립니다.”


말은 차분했지만 속은 부글거렸다.

그리고 마철이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럼 최우선 변제금은 201x년 기준으로 받을 수 있죠?"


부동산사장님의 눈은 잠시 반짝였다.


"아 그렇죠~~~ 그건 여기에 맞게 받을 수 있어요."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최우선변제금 기준, 201x년 기준이죠? 그건 제가 계약한 시점이고."


"네 그렇죠"


"최우선변제금은 그렇게 계산해야 하는 게 아니라, ‘건물 근저당 설정일’ 기준으로 적용돼야 합니다. 그게 200x년이니까, 보호받을 수 있는 보증금 한도가 훨씬 낮습니다. 만약 제가 200x년 기준으로 보증금이 더 컸으면 저는 소액임차인 기준에도 안 들어요.”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아, 그게… 그랬나요....?”


잠시 침묵이 흐르다, 마철이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보험도 못 들었습니다. 이 건물, 근린생활시설인데 불법건축물이라 보험가입이 안되더라구요. 대출도 안 되는 조건이라, 애초에 은행에서라도 알아봤으면 계약까지 안 갔을 거예요. 그런 설명은 왜 안 해주셨어요?”


정적이 흘렀다.

마철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집주인 얼굴도 못 보고 계약했습니다."


사장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 그래도 집주인 얼굴은 보셨잖아요.”


“인덕션 고장 나서 하이라이터 주고 간 중년 남성이요? 그 사람이 집주인이라고 확신하실 수 있으세요? 계약서 쓰는 날도, 잔금 치를 때도 그 사람 안 나왔잖아요. 위임장도 없었고요.”


사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 예전에 건물이 두 채 있다고 본인이 건물 관리 직접 한다고 부동산도 하셨다고 말하셨잖아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 모르겠네요.”


사장의 뻔뻔한 거짓말에 마철은 기가 찼다.


경매개시가 된 그날 밤 마철이는 인터넷을 뒤졌다.


부동산 사장이 얘기한 지역에서 건물이 많은 사람.

그의 흔적이라도 찾아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이 있다면 찾아 책임을 물어보고 싶었다.


가해자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그가 과거 운영하던 부동산, 다음 카페, 블로그, 골프친구, 심지어 자랑하듯 올려둔 ‘내 인생 이야기’까지.

거기에는 ‘예전엔 통역사였고’, ‘지금은 부동산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정말 똑똑했다.


돈 한 푼 없이 건물주가 되고 법적 책임은 피한 채 사기를 사실처럼 만들어냈다.


치밀한 설계였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법을 피하는 방법도, 사람을 믿게 만드는 말도.


그때 마철이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려 했다. 그런데,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우리 엄마 돌아가셨어요. 너무 힘들어요. 손해 보셨으면 뭐 그때 말씀 하시던지… 아직 아무것도 결과는 안 나온 거잖아요? 이젠 좀 그만 와주셨으면 해요.”


그 말은 마치 사과처럼 포장된 칼날이었다.





부동산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장대비 속 물 먹은 신발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그날 이후, 마철이는 아주 조금씩, 아주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철이의 생존 팁

• 최우선변제금보다 세금이 먼저다!

집주인이 세금 체납 중이면 전세금 위험

• 등기부등본에 ‘압류’나 ‘체납처분’ 있으면 피하기!

다가구 전세는 절대 No!

등기부상 한 채라서 세입자끼리 보증금 돌려받기 경쟁함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처럼 각 세대 등기 확인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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