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 키스하면 옮겨요?

그냥 궁금해서요.

by 온리빈




쌉쌀한 자몽의 기억만을 남기고, 나의 첫 알바 생활은 끝이 났다.

사장님의 강렬했던 한마디가 내 마음을 들쑤셔 놓았던 건지,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웠다.

진짜 아파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던 내가, 어느 날은 무심코 걸려온 엄마 전화에 펑펑 눈물을 쏟아낸 적도 있었다.

‘이대로는 없던 병도 더 생기겠다’ 싶어서,
바리스타 일을 배우기는커녕 청소만 하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병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 갑자기 발견된 희귀난치성 질환, 크론병.
확진을 받은 그날 이후로 나는,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들춰보면 꽤 아픈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겉보기에 너무나 건강하게 잘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언제 또 아파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알바를 시작하게 됐을 때, 혹시나 나의 아픔이 그 업장에 지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면접을 볼 때마다 내가 가진 질병에 대해 항상 미리 말씀을 드려왔다.







자몽 카페를 그만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예쁘게 봐주셨던 교수님께서 지인의 카페를 소개해 주셨다.

알고 보니, 그 카페는 내 자취방에서 걸어서 3분 거리.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한 책방카페였다.
일하면서 책도 읽는다니, 이걸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교수님의 추천도 있었기에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은 사장님은 따로 계셨지만, 모든 운영을 담당한 건 점장님이었다.

처음 만났을 땐, 키가 크고 훤칠한데 내 스타일은 아닌 사람. 딱 거기까지.
인상은 차가워 보였지만, 질문하면 굉장히 잘 설명해 주셨고,
가르쳐주신 대로 잘 따라 하면 칭찬도 아낌없이 주시는, 생각보다 따뜻한 분이었다.






손님이 많지 않았던 어느 날 오후.
앞치마 속의 휴대폰이 ‘지잉’ 울려 확인하니 남자친구의 연락이었다.
‘빠르게 답장하고 넣어야지~’ 하며 재빨리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찰나,

옆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점장님이 물으셨다.




“남자친구?”


“아, 네. ㅎㅎ”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해도 되냐고 하셨다.





“그… 면접 때 아프다고 했었잖아요? 그 병은 왜 생기는 거예요?”


“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원인을 몰라서 ‘희귀난치병’이라 불리는 걸지도요.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아프니까… 먹는 것 때문이 아닐까 추측만 하고 있어요.”





그러더니, 살짝 망설이다가 좀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하셨다.

뭐, 이미 무례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본 터라
‘말해보세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남자친구 만나면… 스킨십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키스 같은 걸 했을 때… 타액이 섞이고 그러면, 병이 옮거나 그러진 않아요?”






처음 듣는, 아주 신박한 질문이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면 이런 게 궁금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엉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궁금했을지도.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아잇, 제가 가진 병은 그런 병 아니에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대화였지만, 그 말은 지금까지도 가끔 곱씹게 된다.

나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는 ‘아무렇지 않기 위한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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