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가 보여주는 생활 문화의 층위
사람은 모두 어딘가에 머물며 산다. 하지만 그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어의 ‘거처(居處)’는 사람이 머무는 개인적 공간을, ‘거주지(居住地)’는 사회적 공간을, ‘주소(住所)’는 행정적 위치를 나타낸다. 이 세 단어는 단순한 위치 정보의 차이가 아니라, 공간을 대하는 한·중·일의 언어 문화적 태도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단서이다.
‘거처(居處)’는 『예기(禮記)』나 『논어(論語)』 등의 고전 문헌에서도 나올 정도로 가장 오래된 거주 관련 한자어이다. 중국어에서는 본래 ‘居(거하다)+處(처하다)’라는 행위와 관련된 ‘행동거지의 예절’이나 ‘몸가짐’을 강조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거하는 곳’이라는 공간적 의미로 확대되어 쓰인다. 일본어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대신에 같은 뜻을 가진 居所(いどころ)[idokoro]를 쓴다. 한국어에서는 주로 ‘거처를 마련하다’, ‘거처를 옮기다’, ‘임시(臨時) 거처’처럼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거나 지내는 곳’의 뜻으로 쓰인다. 즉 사람이 머물며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거처’는 주로 행정적 의미로 쓰이는 ‘주소’와 달리, 생활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거주지(居住地)와 주소(住所)가 근대적 행정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이다. 이 말들은 엄밀히 말하면 일본식 한자어지만 거주지(居住地)는 오늘날에는 중국과 한국에서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주소(住所)는 한국어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중국에서는 지금도 공식적‧법률적인 문서에서만 주소(住所)를 쓰고 일상적으로는 ‘地址[dìzhǐ](‘address’의 뜻으로 쓰이는 중국어)’를 쓴다.
‘거주(居住)’는 한대(漢代) 문헌부터 이미 ‘일정한 곳에서 살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지만, ‘거주지(居住地)’는 근대적 국가의 개념이 확립된 이후에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이 말은 본래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의 인구 통계·주민 등록 제도를 도입하면서 행정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식 한자어이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말(末) 이후 근대적 행정 체계가 확립되면서부터 쓰였고,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주민 등록, 호적 등에서 법률적·통계적 의미의 거주 단위로 쓰고 있다.
오늘날 ‘거주지(居住地)’는 ‘주소(住所)’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상 주소는 서울이라도 실제 거주지는 다를 수 있는데, 이때 법률에서는 실제 거주지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거주지(居住地)’는 국가가 국민(개인)의 생활을 관리하는 공간적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주소(住所)’라는 말 역시 본래 중국 한문에서도 ‘사는 곳’을 뜻했지만, 현대적 의미로 행정상 등록된 위치 정보를 가리키게 된 것은 일본의 근대 행정에서였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식 주소 제도를 도입하면서 ‘住所(주소)’라는 단어를 법령에 사용했고, 이 개념이 그대로 한국과 중국으로 확산되어 쓰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식 문서나 법률 용어에서만 쓰이지만, 한국에서는 ‘주소 등록【住所登錄】’, ‘주소 변경【住所變更】’, ‘주소 불명【住所不明】’, ‘주소지【住所地】’와 같은 일본식 표현까지 그대로 쓰고 있다.
거처(居處), 거주지(居住地)와 주소【住所】는 같은 ‘사는 곳’을 뜻하지만, 그 언어적 표현 속에는 사람과 공간의 관계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었는지가 담겨 있다. 한자어의 미묘한 차이를 살피는 일은 단순한 어휘 비교를 넘어, 동아시아의 생활 문화가 어떻게 제도화되고 변화되어 왔는가를 읽는 일이다. 결국 ‘사는 곳’이라는 평범한 말 속에도 한 사회의 역사, 제도, 그리고 문화의 층위가 겹겹이 새겨져 있다.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는 ‘이메일 주소’를 뭐라고 할까?
한국어에서는 ‘이메일 주소’, ‘인터넷(홈페이지) 주소’ 같은 말들도,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는 주소【住所】처럼 똑같이 사용하지만,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는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电子邮件地址[diànzǐ yóujiàn dìzhǐ], 또는 줄여서 ‘邮箱地址/邮件地址’라고 한다. 电子邮件은 전자우편(電子郵便)이고, 地址는 주소(address)의 뜻이어서 “请告诉我你的电子邮件地址。(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세요)”처럼 地址[dìzhǐ]를 쓴다. 구어에서는 ‘邮箱地址/邮件地址’라는 표현도 자연스럽다. “我的邮箱地址是……(제 이메일 주소는 …입니다)”라고 하지, 주소(住所)는 절대 쓰지 않는다. ‘주소(住所)’는 물리적 거주지에만 쓰기 때문이다.
일본어에서는 ‘メールアドレス(mēru adoresu)’, 또는 ‘電子メールアドレス’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메일 어드레스(メールアドレス)라는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쓴다. 신문, 방송, 공문서 등 거의 전부 이 형태를 사용한다. “メールアドレスを教えてください。(메일 주소를 알려 주세요)”라든가, “彼の電子メールアドレスは会社のものです。(그의 이메일 주소는 회사의 것입니다)”처럼 ‘アドレス(address)’를 쓴다. 일본어에서도 ‘住所(じゅうしょ)’는 “自宅の住所(집 주소)”처럼 실제 주소에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처(居處)(-하다) n.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거나 지내는 것. 또는 그런 공간. =거주지(居住地); 소재【所在】, ㊐ 所在(しょざい).
㊥ 居处[jūchù]; 居所[jūsuǒ]; 住处[zhùchù]; 居住地[jūzhùdì], ㊐ 居所(いどころ‧きょしょ); 居住地(きょじゅうち). Ⓔ abode; a place of residence; dwelling place.
예) 거처를 정하다. 거처를 옮기다. 임시 거처〘臨時居處〙 临时住处[línshí zhùchù], ㊐ 仮住所(かりじゅうしょ); 仮住い(かりずまい). 임시 거처를 마련하다. 找个临时住所。zhăo gè línshí zhùsuŏ. 일정한 거처가 없다. 居无定所。jū wú dìngsuŏ.
cf) ‼중국어 居处[jūchù]는 “君子居處恭”와 같은 『논어(論語)』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평상시의) ‘행동거지나 몸가짐’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생활하면서 처리해야 할 일’의 뜻과 ‘사는 곳’의 의미로 확대된 말이어서 한국어보다 의미가 넓게 쓰이는 말임. 한편, 일본어에서 居処(きょしょ)[kyosho]는 거의 쓰지 않고, 대신에 居所(いどころ)[idokoro]나 所在(しょざい)[shozai]를 씀.
거처하다〔居處+_하다〕(-에)~거처하여/거처해~거처하는 vi.
㊥ 住, 居住[jūzhù] ㊐ 住(す)む; 居(い)る.
예) 임시로 거처하다. 거처할 곳을 마련하다.
거주지(居住地) n.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소. ≒주소【住所】; 거처(居處)
㊥ 居住地jūzhùdì]; 居止[jūzhǐ], ㊐ 居住地(きょじゅうち). Ⓔ place of residence.
예) 거주지를 옮기다.=이사하다; 거처를 옮기다. 移居[yíjū]; 迁居[qiānjū]
<참> 거주(居住)(-하다)[거주] n.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물러 삶. 또는 그곳. =주거(住居)[주ː‧] ㊥ 居住[jūzhù], ㊐ 居住(きょじゅう). Ⓔ residence
주소【住所】[주ː‧] n. ① (기본적 의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나 기관, 회사 따위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을 행정 구역과 도로명 등으로 나타낸 것. =주소지【住所地】. ②(법률) 생활의 본거인 장소. ③(컴퓨터)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 기억 장소의 위치. =어드레스(address).
㊥ 地址[dìzhǐ]; 住所[zhùsuǒ], ㊐ 住所(じゅうしょ); 住所地(じゅうしょち). Ⓔ address; legal residence
예) 주소 등록【住所登錄】[주ː‧#-녹]; 주소를 등록하다. 地址登记[dìzhǐ dēngjì]; 住所登记[zhùsuǒ dēngjì], ㊐ 住所登録(じゅうしょとうろく)[jūsho tōroku]. 주소 변경【住所變更】[주ː‧#‥]; 주소를 변경하다(變更―). 变更地址[biàngēng dìzhǐ]; 更改地址[gēnggǎi dìzhǐ], ㊐ 住所変更(じゅうしょへんこう); アドレス変更へんこう); 住所を変更(へんこう)する。주소 불명【住所不明】; 주소가 불명함. 즉 주소를 알 수 없음. 地址不明[dìzhǐ bùmíng]; 地址不详[dìzhǐ bùxiáng], ㊐ 住所不明じゅうしょふめい). 주소지【住所地】[주ː‥] 地址[dìzhǐ]; 所在地[suǒzàidì], ㊐ 住所地(じゅうしょち). 이메일 주소〘e-mail 住所〙 电子邮件地址[diànzǐ yóujiàn dìzhǐ]; 邮箱地址, 邮件地址, ㊐ メールアドレス[mēru adoresu]; 電子メールアドレス. 인터넷 주소〘internet住所〙 网络地址[wǎngluò dìzhǐ], ㊐ インターネット・アドレス(Internet address). 연락할 주소.
cf) ‼중국어 住所[zhùsuǒ]는 ‘登记住所(등록 주소)’, ‘户籍住所 (호적상 주소)’처럼 주로 ‘현재 거주하는 곳, 거처(居處)나 체류하는 곳(물리적 거주지)’이라는 뜻으로 행정적인 문서에서만 사용할 뿐, 일상생활이나 구어에서는 地址[dìzhǐ]를 씀. 일본어에서도 ‘住所(じゅうしょ)’는 ‘自宅の住所(집 주소)’처럼 실제 주소에만 사용하고, 이메일 주소〘e-mail 住所〙라고 할 때는 흔히 ‘メールアドレス(mail address)’라고 함.
<참> 거처(居處), 거주지(居住地), 소재지(所在地)[소ː‥], 번지【番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