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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챕터 24: 방화의 밤

by BumBoo

역겨운 숨소리가 좁은 방 안을 채웠다.


나는 그의 침대 옆에 섰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오른발을 들어 노도술의 옆구리를,


마치 썩은 통나무를 차듯 강하게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침대 위에서 튀어 올랐다.


"크어억! 으읍… 이게… 무슨…!"


노도술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의 눈은 풀려 있었고, 얼굴에는 혼란과 짜증,


그리고 몽롱한 술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술기운 탓인지 몸은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침대에서 내려 서려다 다리가 꼬여 그대로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낡은 마루가 삐걱거렸다.


그의 몸에서 역한 술 냄새와 함께 땀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재빨리 그의 위로 올라탔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내 얼굴에 와닿았다.


칼을 든 손을 들어 그의 목에 들이밀었다.


차가운 칼날이 그의 피부에 닿자, 노도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얼굴에서 술기운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공포가 그의 눈을 가득 채웠다.


"야나기 칸조를 아는가?"


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노도술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뇌리 속에서 야나기 칸조라는 이름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했다.


"야나기… 칸조? 네놈이… 설마…


야나기 칸조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는 처음부터 뭔가 께름칙했다고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역력했다.


내가 칸조의 손자임을 눈치챈 듯했다.


나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노도술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이내 비열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역겨웠다.


그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하하하! 그 야비한 영감의 손자라니!


그놈이 혼자서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비참하게 가지는 않았을 것을.


쯧쯧. 탐욕이 부른 자업자득이지.


네 할아비는 스스로 명을 재촉한 거야, 이놈아!"


그의 조롱 섞인 말에 내 안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다.


할아버지를 모욕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심장을 찢는 듯했다.


나는 칼날을 그의 목에 더 바싹 붙였다.


그의 목에서 핏줄이 울컥 솟아올랐다.


"할아버지의 유물은 어디에 숨겼나?"


나의 질문에 노도술은 다시 한번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눈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걸 알려줄 것 같으냐?


네놈 따위에게? 평생을 찾아다녀 봐라! 하하하!"


그의 비꼬는 듯한 말투와 비열한 웃음.


그 순간, 내 안의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손에 든 칼을 그의 배에 망설임 없이 꽂아 넣었다.



칼이 사람의 살갗을 뚫는 그 서걱대는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질긴 고깃덩이를 가르는 듯한 둔탁하고 끈적한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노도술의 얼굴은 순식간에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입에서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피 거품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는 배를 부여잡고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굴렀다.


그의 몸은 경련했고, 희미한 신음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붉은 피가 낡은 마루 위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막상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나니,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차갑게 계산하는 또 다른 내가 깨어나는 듯했다.


빨리 증거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재빨리 거실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창고에서 곤로를 피우기 위한 석유를 찾았다.


비릿한 석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망설임 없이 석유통을 들고 사택 안 곳곳에 닥치는 대로 뿌려댔다.


낡은 가구들, 곰팡이 슨 벽지,


그리고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노도술의 몸 위에도.


석유가 마루에 흥건하게 고였다.


성냥을 그었다.


'쓰윽'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불꽃을 석유가 흥건한 바닥에 던졌다.


'활활' 소리와 함께 석유를 타고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붉은 불길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폐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 나의 과거, 나의 고통, 그리고 노도술의 추악한 존재까지.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멍하니 불길이 거세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꽃은 점점 더 거세지며 천장까지 닿을 듯 솟아올랐다.


열기가 얼굴을 태울 듯 뜨거웠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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