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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챕터 25: 유물의 주인

by BumBoo

코끼리 바위 아래 텅 빈 동굴을 확인한 후,


우리는 말없이 산을 내려왔다.


낡은 승합차 안의 공기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한 달간의 헛된 탐색, 유물을 찾을 수 있다는 희미한 기대감,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허무감.


그 모든 감정들이 차 안에 가득 차 숨통을 조여왔다.


기철이는 운전대 위로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차를 몰았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감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의심하는 듯했다.


내가 유물을 빼돌린 것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으로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나를 향한 그의 의심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백미러로 본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힐끗거렸고,


그 불신은 차가운 칼날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어렵게 입을 뗐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나는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네 차례다.


한수련 부원장님은… 어디 계신 거야?"


나의 질문에 기철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시선은 창 밖의 어둠 속에 박혀 있었다.


그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 할망구가 어디에 살아있건 뒈졌건 내가 알게 뭐냐.


내 알 바 아니야.


그딴 늙은이 행방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무책임하고 경멸 섞인 그의 말에 순간, 그동안 쌓였던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한수련 부원장님을 향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했다.


나는 이성을 잃고 기철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그 순간, 운전대를 놓친 차가 비틀거리며 중앙선을 넘어갔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을 찔렀다.


'끼이이익!'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이 도로를 찢었다.


굉음과 함께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하마터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될 뻔했다.


기철이는 급하게 핸들을 틀어 차를 갓길에 대었다.


차가 멈추자마자,


패배자들의 처절한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는 내 어깨를 밀치고 주먹을 휘둘렀다.


좁은 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안전벨트에 묶인 채 발버둥 쳤지만, 힘으로 기철이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내 얼굴에 와닿았다.


나는 그의 몸에 눌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연신 씩씩대며 기철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우리의 몸은 좁은 차 안에서 뒤엉켰고,


땀과 분노가 뒤섞인 숨소리만이 거칠게 오갔다.



한참을 뒤엉켜 싸우다 보니, 기철이도 지친 듯했다.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내 몸 위에서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땀과 피로로 번들거렸다.


"이제 그만하자. 놓아줄 테니…."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나도 알았다고 하고,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고속도로의 어느 갓길. 차가운 밤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가 된 채,


멍하니 차창 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밤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만이 아득하게 이어졌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기철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의 분노나 의심과는 달리,


어딘가 허탈하고 혼란스러웠다.


"정말 네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유물을 가져간 걸까."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는 듯했다.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누군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하고 유물을 꺼내 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유물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너와 나,


그리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도술 원장 밖에 없을 텐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가 스며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정말."


그의 목소리에는 미신적인 두려움마저 섞여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내 휴대전화에서 문자 알림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순간 놀라서 몸을 들썩였다.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을 확인하자


한눈에 우리가 그렇게도 간절히 찾던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유물들의 사진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짧은 메시지였다.



<이제야 물건이 제 주인을 찾았으니 아쉬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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