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 감정인데요
우리는 매일을 산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 속엔 늘 관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관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가면 연락할 거야? 안 할 것 같아서 ㅋㅋ"
"......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고. 내가 안 하면, 네가 하면 되지."
회사에서 함께 밥을 먹는 동료가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방치하며 사는 사람이었고, 자기표현이 서툰 사람이었고, 오랜 시간 함께 일했음에도 다른 동료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10년이 넘게 한 회사에서 일하던 그에게, 처음이자 유일하게 편했던 동료는 나였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편안했단 건 아니다. 그저, 그 많은 사람 중 그나마 편안했던 동료.
그런 나에게, 서로 연락을 안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와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의 관계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었을까.
회사엔 여러 사람이 있다.
일에 애정을 가지고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
정해진 일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는 사람.
일에 성실한 사람이 감정 소모를 더 많이 하는 구조는 흔하다.
입으로는 "뭐 어때, 각자 방식이 있지"라고 하면서도, 속으론 "왜 저럴까..."라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이 관계를 어긋나게 할까 봐.
불편해질까 봐, 민망해질까 봐, 괜히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결국 또 그렇게 감정을 자꾸 누르다 보면,
내가 생각과 맞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한 괴리감, 그 불일치성이 불편함으로 남는다.
여기서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잘' 지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애초에 우리는 모두와 잘 지낼 수 없다.
그리고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없다.
그냥 '지내면' 되는 관계도 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한 관계도 있다.
'잘'이라는 그 말도, 결국 내 안의 기준일 뿐이다.
나는 항상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어쩌면 강박 같은 기준.
감정도, 관계도, 반드시 매끄러울 필요는 없다.
감정은 감정이고, 관계는 관계다.
나의 행위는, 그저 행위일 뿐이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감정을, 남에게 맡길 필요도 없다.
상대가 먼저 말해주길,
상대가 먼저 다가와주길,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나를 참아왔던 시간들.
그 시간은 어쩌면, 내 감정을 상대에게 넘겨버린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먼저 표현해도 괜찮다.
내가 느낀 감정이 어색해도, 조금은 어긋나더라도,
내 마음을 나의 방식대로 다루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지키는 방법 아닐까.
그래서 다시 묻는다.
당신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누구와도 어긋나지 않으려 애쓰다,
스스로와 어긋난 채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
사람들과 잘 지내려 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잘'의 기준을 다시 내 손에 쥐고
그저, 나답게 지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