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러운 건, 드러내는 거예요.

그냥, 내 감정인데요

by 물결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진 않을지, 그로 인해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지, 그런 나의 일부를 보고 나를 평가하진 않을지..


그래서 내 마음을 숨긴다. 내 감정을 숨긴다.

그 순간 숨겨지는 건,

그냥, 나다.

꺼내지 못한 건 그냥 그 마음, 그 단어 하나가 아니라 그런 맘을 가진 나의 모습이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나를 감추었기 때문에 작아지는 거다. 결국 나를 표현하는 그 말 한마디를 못해서, 내 목소리가 입가를 맴도는 거다.


"물결씨가 했던 말, 저도 하려다 말았어요."

"물결씨의 의견은 저도 생각했던 건데..."

"좀 별로인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다들 괜찮아하는 걸 보니) 제가 말할 걸 그랬네요."

-회의시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


'네가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했지만, 너는 모를 거야. 내 마음을 말하면 네가 상처받을까 봐 나는 결국 참고 넘겼다는 걸.'

-친구와 다투며 들었던 상처되는 이야기.


마음 표현을 미루다 보면, 결국 내 감정을 나도 모르게 된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채 지나는 감정의 파편들이 내 몸 여기저기 박혀버린다.


그러다, 감정이 너무 차서 흐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그 감정만 모이게 된다.


때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고, 때론 이유 없이 울적해지기도 한다. 누가 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울컥하는 때가 있다. 분명 기분 나쁜 일이 없었는데도, 하루 종일 무기력함에 빠지게 되는 날이 있다.


그건 그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내가 말하지 못했던 감정의 조각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내가 모르는 틈에 감정이 가득 차 버렸단 걸, 뒤늦게 알게 된다. 감정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튀어나와 버려 모두를 당황시킨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누군가 "괜찮아?"하고 묻는 순간 눈물이 나는 날도 있다. 그래서 위로는 조심스럽다.

생각지 못한 상대의 위로에 눈물이 흐를 수 있지만,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조각이 언제 응답할지는 모를 일이다.



조심스럽더라도, 드러내야 한다.

상처받게 되더라도, 나에게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지, 그 상처는 결국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 살필 수 있다.


조심스러움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의 하나다. 그러니 조금씩, 내 감정을 나에게 말해보자.

내 마음을 내가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더라도, 상대가 알아챌 수 있을 때까지.


울창한 숲 속에 감춰지는 새의 울음이라도,

큰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속 작은 물고기의 파장일지라도.


드러내는 건 누구에게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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