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초등학교] 96화 평화를 위한 조건들

서울랜드, 계약 연애, 그리고 용서의 가격표

by 동룡

규만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는 수빈의 몰골을 보자마자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야... 뭐야 저 꼴은? 무슨 드라마 찍냐?”

수빈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지수와 태연의 뒤에 숨듯 웅크렸다.
규만은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주워 들며 말했다.

“보아하니 조용했던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민지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자~ 우린 수빈이 용서하고, 평범하게 학교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방금 형준이도 ‘용서’까지는 했어. 그러니까 너도 도와줘야지.”

규만은 자루를 휙 돌리며 말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형준이야 뭐, 정연이가 애교 부리며 꼬셨겠지.
나는 아니야. 난 쟤 용서 못 해.”

“왜?”
민지가 물었다.

“왜냐고? 내가 쟤 용서해서 얻는 게 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고,
오히려 기분만 나쁘고.”

민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음... 나한테 점수는 얻지 않을까?”

규만은 한숨을 푹 쉬었다.
“... 그 점수 허구한 날 마이너스야. 플러스될 틈이 없어.
게다가 어차피 난 너한텐 남자친구 못 될 건데 뭐... 그냥 성질이나 풀어야지.”

그는 대걸레 자루를 치켜들었다.
“이 최수빈!! 너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짜증 났는데!!! 넌 그냥 맞아야 해!!”


민지가 조용히 말했다.

“이번 주말에... 서울랜드 갈래? 우리 둘만. 단둘이.”

규만의 손이 멈췄다.

“… 진심이야?”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야. 대신 수빈이 용서해. 돕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규만은 밝게 웃으며 대걸레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케이~ 주말에 봐~ 서울랜드 좋지~”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화장실을 나갔다.
태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간단한 걸... 벌써 절반이나 해결했네.”


그때, 규만과 맞춘 PSP를 들고 붕어빵을 입에 문 대용이 등장했다.
딱 봐도 한 판 끝내고 나온 표정이었다.

지수가 먼저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용아, 수빈이 말이야… 네 반 애들도 싫어하긴 하는데,
너라도 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다들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대용은 붕어빵을 천천히 삼키며 말했다.

“음... 도와줄게. 근데 조건이 있어.”

“응? 무슨 조건?”
지수가 물었다.

“일주일간... 나랑 남친 여친 해주는 거.”

“뭐어?! 야!! 그건...”

지수와 수빈, 심지어 태연까지 동시에 놀라 소리쳤다.


“왜? 괜찮잖아?
난 얘한테 엄청 뭐 싫고 그런 것도 없고... 딱히 얻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건 되게 괜찮은 거래야.”

대용은 PSP를 가방에 넣으며 수빈을 바라봤다.

“대신 하나만. 형준이 성격은 건들지 마. 진짜 머리 아파져.
그거만 안 건드리면, 나 도와줄게.”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복도에서 계산기 소리와 함께 우덕이 등장한다.
그는 마치 외계에서 온 회계사처럼 느긋하게 등장했다.


예린은 거의 절규하듯 외쳤다.

“우덕아!! 제발 좀 제정신 차려봐!!
형준이는 소원 때문에 용서했고, 규만은 서울랜드에 팔렸고,
대용이는... 지수랑 남친 여친 놀이한다고 도와주겠대!!!
너까지 그러면 진짜 다들 미친 거야!!”

우덕은 고글을 벗으며 턱을 괴고 말했다.

“흠... 생각보다 다들 괜찮은 거래를 했네.
형준이만 아무것도 못 받아서 입이 나왔던 거구나.”

그는 수빈을 향해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정연이면 알아서 잘 달래겠지.
걘 똑똑하잖아. 정리하는 것도 잘하고.”

그리고는 수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래.
이제 나만 남았나?
자, 나한텐... 어떤 거래로 용서받을래?”

수빈은 말이 없었다.
그저, 더는 울 힘도 남지 않은 채… 고개만 천천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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